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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르 코르뷔지에 하우스

2019년 7월의 기록

by 바다에 내리는 눈

내가 프랑스에서 살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푸아시 (Poissy)라는 동네에 르 코르뷔지에 건축의 정수와 같은 빌라 사보아 (Villa Savoye)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늘 그렇듯이 사람은 하고 싶은 일과 중요한 일을 시급한 일 때문에 미루며 허덕이니까, 아니 내가 그런 중생이니까 5년 동안 가 보지 못했었다.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로 떠나기 바로 일주일 전에야 지금 못 가면 영영 못 가지 싶어 빌라 사보아를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17795931_10155219919904321_8081667886141228154_n.jpg 빌라 사보아 외부
17799899_10155219920044321_1312293267805190982_n.jpg 빌라 사보아 내부

지금은 막을 내린 JTBC 예능 프로그램 '한 끼 줍쇼'에서 진행자 강호동이 "찬 물에 찬 밥 말아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입시다 어머님~" 이런 멘트만 하는 게 아니라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는 사람에게 필요한 공간은 단 4평이라 했거든요"하며 좁은 집이어도 괜찮다며 들어가겠다는 얘기를 할 때는 조금 놀랐다. 이제 르 코르뷔지에의 이름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들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건축에 관심이 많아졌구나.


르 코르뷔지에의 오두막

스위스에 와서 보니 취리히에도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건축물이 있다. '르 코르뷔지에 하우스'는 미완성 건축물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건물 구석구석을 영어로 설명해 주는 가이드 투어를 마치고 지하에 전시된 르 코르뷔지에 생전의 모습 사진들과 그의 개인적인 수집품을 둘러보았다.


그 자신의 말대로 르 코르뷔지에는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 공간 단 4평의 작은 오두막에서 인생의 마지막 시절을 보냈다. 사진을 보니 그 안에 인공적인 장식물은 없다. 이웃 푸줏간에서 얻은 동물의 뼈와 해변에서 주운 돌과 조개껍질 같이 자연에서 빌려 온 작은 것들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 그의 사후 (노령의 나이에 의사의 권고를 물리치고 수영을 하다 사망) 방을 치운 사람들이 그의 스케치에도 자주 등장한 돌멩이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버렸는데 르 코르뷔지에 전문가가 이렇게 중요한 돌멩이가 없어졌다니, 하고 안타까워 주변을 샅샅이 뒤져 겨우 다시 찾아냈다고 한다.

르 코르뷔지에에게 영감을 준 돌멩이와 그 스케치

조명 쏘고 멋진 유리관에 스케치와 함께 전시하니 꽤 근사한 돌멩이여서 찾길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전문가의 근성도 칭찬하고 싶고, 중요한 물건의 가치를 못 알아보는 사람들의 무지몽매함을 꾸짖는 우화 같은 이야기로구나 싶지만......


한편으로는 말년의 르 코르뷔지에가 알았으면 '뭐하러 찾았어?'라고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해변의 자갈밭으로 돌아가도 좋잖아 어차피 거기서 온 건데, 다른 누군가도 우연히 이 돌멩이를 나처럼 의미 있게 바라보고 발견해 줄까 궁금한데, 아니 뭐 영영 발견되지 않는다 해도 내 그림 속에 남았잖아. 자연으로 돌아간 르 코르뷔지에 영감님이 이렇게 말하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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