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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팥죽

2017년 12월의 기록

by 바다에 내리는 눈

스위스에서 한식을 해 먹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젤에는 한인 마트가 없어서 몇 안 되는 아시안 마트에서 비슷한 재료들을 구해 보기도 하지만 영 그 맛이 나질 않는다. 대파같이 생겨서 사 보면 부추 맛이 나고 콩나물인 줄 알았는데 숙주였다. 작은 베트남 고추는 또 어찌나 매운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독일 국경과 가깝게 살고 있어서 독일의 한인 마트 온라인 쇼핑몰에서 장을 봐서 국경 지대에 있는 배송 대행지 창고로 배달을 시켜 약간의 수수료를 내면 한식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선택 사항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 한인 마트 쇼핑몰이 크레디트 카드를 받지 않는 데다가 배송 날짜를 맞추어 픽업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신선식품이나 냉동식품, 반찬류는 하루라도 넘기면 상하거나 창고 안에서 냄새를 풍겨 가지러 갔을 때 독일인 직원들에게 눈치가 보인다.) 이조차도 자주 하지 못하고 날을 잡아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식 재료를 배달시킨다.


그렇게 공수한 팥을 가지고 동지 팥죽을 한 솥 끓였다. 독일 국경 창고에서 팥을 픽업해 와서 물에 6시간 이상 불리고 한 번 끓여서 불순물과 잡내를 없애고 첫 물을 따라 내고 다시 푹 끓이고 새알심까지 반죽해 넣었다. 처음 해 봐서 그런지 꼬박 하루가 걸리는 과정이었다. 어제는 분명 맛있었는데 오늘 아침 냉장고에 넣으면서 맛보니 12월 치고는 너무 따뜻해서인지 조금 쉰 듯했다. 어제 집에 온 손님에게 좀 더 넉넉히 나누어 줄 것을 괜히 나 먹을 양을 계산해서 남겼나 후회가 되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다 퍼 주고 호인 소리나 듣는 건데.......


그래도 들인 공이 아까워 일단은 냉장고에 넣었는데 아무래도 지금 부엌에 가서 버려야겠다. 베풂이 부족해서 욕심으로 움켜쥐었으면서도 게을러서 방치되어 쉰 팥죽을 새해까지 가져가는 것은 12월의 마지막 날에 어울리지 않겠지. 새해엔 내 분량만큼의 행복이 쉬거나 썩지 않게 반질반질 닦아 가며 부지런히 살 수 있기를.


26173997_10156024330434321_6591162674780766780_o.jpg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2017년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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