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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식당과 카페가 다시 문을 연 날

2020년 5월의 기록

by 바다에 내리는 눈

장미꽃 두 다발을 선물 받고 겨우 한 다발도 못 살렸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기보다는 '이거 참 성가시게 되었군' 하고 한숨 쉬는 타입인데도 이왕 선물을 받았으니 소중히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설탕물에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 넣어 주고 신경을 꽤 써 줬는데 꽃잎이 서로 닿는 부분이 누렇게 짓물러 간다. 요즘 말로 개복치 멘털이라는 게 있던데 이럴 땐 꽃잎 한 장의 압력에도 버거워 항복해 버리는 이 예쁘기만 하고 찰나 같은 생명이 서러워서 화가 난다. 어쩌자고 너는 이렇게 연약하게 태어나서......


눈이 밝은 아이와 산책을 하다 보면 자꾸 멈춰 서게 된다. 제 몸보다 큰 구더기의 사체를 끌고 가는 개미를 발견한 아이는 신기해서 발길을 멈추지만 나는 얼른 집에 가자고 재촉한다. 이 작은 개미에게 거대한 나란 존재는 이렇게 잔인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의 사투를 모르면 밟고 지나가고, 알아도 돕지 않고 외면하는 이것이 혹시 신과 인간의 관계면 어쩌지, 겁이 덜컥 난다. 아니, 나는 개미를 창조하지 않았다. 나는 개미의 부모 된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와 나의 관계성이 부재하여 외면하는 것이다. 내 아버지, 내 창조주는 나에게 그럴 리가 없다.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 자신을 설득한다.


그러나 모든 부모 있는 자가 때론 고아같이 느껴지는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순간이 있지 않는가. 짧은 삶을 선물 받은 모든 자가 때론 꽃잎 한 장의 무게에도 멍이 들어 주저앉지 않는가. 부모를 일찍 여읜 사람이 가장 부모를 사랑한다. 칠순 나이에도 아직도 뒷산을 홀로 오를 때 10대에 여읜 아버지와 30대에 여읜 어머니를 그리며 눈이 빨개져 돌아오는 내 육신의 아버지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더 외롭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식당과 카페가 문을 닫아 텅 비었던 거리에 하나 둘 파라솔과 테이블이 다시 놓이고 담배 피우는 젊은 여자와 마스크를 쓴 노인과 시끄러운 하루를 마감한 일개미들이 모여들어 각자의 숨을 내뿜고 눈물 같은 물방울 맺힌 맥주잔을 부딪치는 여름밤이 오면 나는 갑자기 그 모든 존재들이 이 꽃잎인가 하여 어디 멍이 들었나 찬찬히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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