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유학 나온 2001년 9월에 누구나 알듯 9.11이 터졌다. 첫 학기 개강이 몇 주 지나지 않아 맞닥뜨린 이 어마어마한 사건이 나의 미국에 대한 첫 이미지이다. 미국에 꽤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9.11 이전의 미국을 모른다는 게 아쉬울 때가 있다. 그건 미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사건이기 때문에.
그때 발 빠른 교수와 박사들은 미리 정해 놓은 연구 방향과 가설 검증에 필요한 설문 문항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9.11 관련 단어만 추가해서 거의 실시간으로 9.11이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는 얘길 듣고 석사 과정이었던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내 동생이 교환학생으로 가 있었던 텍사스의 작은 학교는 9.11 공격 소식을 듣자마자 기숙사에 있던 어린 학부생들이 울면서 뛰쳐나가 잔디밭에서 손을 잡고 기도하고 서로 위로했다던데......'더 크고 이름이 알려진 이 학교의 학자들과 대학원생들은 연대보다 연구가 우선인가?'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만약 의학박사가 다른 바이러스 백신을 연구 중이었는데 마침 비슷한 코로나가 발견돼서 연구에 더 박차를 가해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는데 힘썼다면 칭찬해 마땅할 일인데 사회과학에 대한 인식이 이렇다 (그 안에 몸담고 있던 나부터 이런 생각을 했으니). 장기적으로는 어딘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겠지만 즉각적으로 보이는 효과가 없기에 위기의 순간에 침착하게 하던 연구를 계속해 나가면 냉혈하고 무용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얘길 전해 주던 사람들이 9.11의 충격보다는 그 연구자들의 발빠름과 부지런함에 경탄하던 것이 느껴져서 어리고 미숙한 나에게 그런 충격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 비행기 테러 이후 사람들을 한동안 또 공포에 떨게 했던 것이 탄저균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잊었을 거 같은데 당시엔 공포의 백색 가루라고 해서 그게 묻어 있을까 봐 우편물 열어 보는 것도 두려워했었다. 나는 미국에 있었으니 탄저균이라는 말보단 앤쓰럭스(Anthrax)가 더 익숙한데 이 단어를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래도 텔레커뮤니케이션 전공인데 포토샵 정도는 할 줄 알아야 될 것 같아서 굳이 안 들어도 되는 '디지털 미디어아트의 기초'라는 과목을 들으며 삽질 중에 기말 과제로 탄저균에 대한 인터랙티브 퀴즈를 일러스트레이터, 플래시, 포토샵 등을 이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배워 놓은 프로그램들은 그 이후 한 번도 안 써먹었지만 그래도 언젠가 활용할 날이 오지 않을까 했는데 2020년 12월 31일에 어도비 플래시가 공식적으로 서비스 종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당시 학교의 나노 바이오센서 랩을 이끌며 미국 국방부의 생화학테러 대비 기구 자문 역할도 하는 교수님과 친했는데 그분이 했던 말이 생생하다. 본인도 생화학 전공자이지만 탄저균 테러 위협 이전엔 일상생활에서 별로 공포를 안 느꼈는데 무심코 뷔페에서 음식 집게를 집는 순간 '이 집게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진 걸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싹해졌다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는 지금까지 마트에서 빵을 담을 때 되도록이면 집게를 안 쓴다. 어차피 내가 먹을 거니까 모양이 으스러져도 좋으니 종이봉투를 뒤집어서 직접 만지지 않고 손으로 담아 오는 게 여러 사람이 만진 집게를 쓰는 것보다 맘이 편하다. 앤쓰럭스는 한국어로 뭐였는지 기억이 바로 안 나서 탄저균이란 말을 떠올리기까지 한참 걸릴 정도로 사건 자체는 가물가물해졌는데 공포의 잔상만 생생하게 내 손에 남아 있다.
시간은 19년이 흘러 2020년의 봄날 우리는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내가 쓰는 친환경 세제를 스위스에서 구하기 힘들어서 프랑스 마트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주문하고 드라이브 스루에서 찾아오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20분 거리 프랑스 뮐루즈의 교회에서 1주일 간 기도회를 진행하며 코로나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사건 때문인지 이 동네도 생필품 사재기가 시작되었나 보다. 사고자 했던 친환경 세제는 품절. 조금 좋은 브랜드는 품목을 막론하고 다 품절이고 비인기 제품들만 남아 있다. 갑자기 급한 마음에 나도 각종 세제와 핸드워시를 필요보다 많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드라이브 스루 픽업을 위해 스위스와 프랑스 간 국경을 넘는데 양국 경찰들이 총을 메고 지키고 서 있다. 3년 동안 드나들며 본 국경 경찰들은 한 번도 무장한 적이 없다. 그들의 주요 업무가 스위스 세법 때문에 우유 1리터, 버터, 고기 1kg 이상을 프랑스에서 사 왔나 확인하는 거라 전혀 무장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총으로 막을 수도 없는데 갑자기 웬 무장이란 말인가. 바이러스의 발원은 우한 연구소 유출이다, 아니 미국이 의도적으로 퍼뜨린 것이다, 각종 음모론의 전제는 '이게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일 리가 없어, 제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건 핵전쟁도 아니라 생화학 무기전이라잖아'라는 믿음일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방역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는 사람들 간에 전쟁을 하고 있다.
차로 넘는 스위스 바젤 -프랑스 상루이 국경
무장 경찰의 삼엄한 경계를 넘어, 패닉 바잉을 하는 쇼퍼들 사이를 비집고 겨우 미리 구입한 물건들을 챙겨 집에 왔는데 가장 필요한 빨래 세제가 없다. 급한 마음에 확인하지 않고 품절되기 전 서둘러 온라인 장바구니에 잔뜩 담았던 것이 식기 세척기 세제였던 것. 아, 이 어리석은 자여......
덧붙이는 말: 굳이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싶지 않지만 사족을 덧붙인다. 흑사병이 바젤에 도달한 것이 1348년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 재난의 책임을 돌릴 희생양을 곧 찾아냈고 그건 바로 바젤의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뿌렸다는 소문이 돌면서 성난 시민들은 600여 명의 유대인들을 헛간에 몰아넣고 불을 질러 죽였다. 시의 고위 관리들은 폭도들을 처벌한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200년 동안 바젤에 유대인은 살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고 그들을 쫓아냈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것은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쓴 누명이었는데 14세기 바젤에서도 똑같은 가짜 뉴스가 있었다니. 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 우물은 정말로 생명샘이어서 전염병이나 지진 같은 재난으로 공동체가 위협될 때 '우리가 죽어간다'라는 말을 '생명샘에 독이 퍼졌다'로 표현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탄저균이 잊히듯 언젠가 코로나 바이러스도 잊힐 것이다. 그러나 병의 이름만 달라질 뿐 다음 유행병에도 우물에 독을 푼 자를 발본색원하라는 아우성은 계속될 것이다. 어리석은 사재기와 무용한 무장으로 잠시 불안함을 가려서는 이 생명샘을 지킬 수 없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