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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8번 트램

2020년 2월의 기록

by 바다에 내리는 눈
스위스 바젤과 독일 바일암라인을 다니는 8번 트램


내가 사는 바젤은 세 나라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재미있는 도시다. 우리 집에서 11번 트램으로 한 정거장만 가면 프랑스라서 디저트나 바게트, 해산물을 살 땐 프랑스로 장을 보러 자주 간다 (스위스는 프랑스처럼 미식의 국가가 아니라 그런지 마트에 해산물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1번 트램을 타고 두 정거장 후에 8번 트램을 타면 독일로 간다. 8번 트램은 원정 쇼퍼들이 많이 타서 '쇼핑 트램'으로 불리기도 한다. 스위스의 비싼 물가 때문에 바젤 시민들도 말이 통하는 독일에 가서 생필품을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애국심이 투철하고 지역 경제를 살려야지, 하는 시민의식에 불타는 이웃들도 있어서 스위스 사람들은 독일로 쇼핑 가는 것을 공공연히 드러내 놓고 하진 않는다. 물어보면 거의 다 스위스에서 돈 벌어 독일에서 소비해 주는 게 어디 있냐며 자신은 로컬 마켓에서 쇼핑한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8번 트램은 만원이니 누가 타고 가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하루는 나도 독일 약국에 갈 일이 있어 8번 트램을 타고 가고 있었다. 국경을 지나갈 때 트램은 잠시 멈춰 서고 경찰들이 올라와 한 명씩 신분증을 검사한다. 이때가 되면 나는 운전할 줄도 모르면서 운전자의 심경을 이해한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경찰을 보면 괜히 겁이 나는 그 마음. 내 눈 앞에는 흰 반바지와 흰 폴로 티셔츠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흑인 청년이 물병을 끼워 넣은 륙색을 메고 서 있었다. 모두가 무채색의, 몇 번은 빨아 먼지 묻고 바랜 옷을 입은 스위스 사람들 중에서 새 옷 특유의 빳빳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는 너무나 하얀 반팔, 하얀 반바지를 입은 청년의 느낌은 말쑥하지만 생경하고 그의 이방인 지위를 더욱 도드라지게 할 뿐이었다. 그의 피부색과 옷 색깔의 대비만큼이나. 나는 어쩐지 그에게 불운이 닥칠 것 같은 오지랖 넓은 불안감에 초조하게 그를 바라보며 경찰이 내게 오길 기다렸다. 두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한 사람은 앞에서부터, 한 사람은 뒷자리부터 내려오며 차례로 신분증 검사를 하던 경찰들이 그의 앞에 머물렀다.


"아이디?"

"......"

"여권? 체류증? 아니, 아무 신분증이라도?"


경찰은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것처럼 거푸 물었다. 무어라도 좋으니 너를 증명할 종이쪽지를 내놓으라고. 그저 고개만 젓던 젊은 남자에게 경찰은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벨기에."

"벨기에? 이 트램을 타고 신분증 없이 벨기에로 간다고?"


아. 이 사람아. 라인 센터에 그로서리 쇼핑 간다고 했어야지...... 아니면 가까운 역 이름을 대거나 어쨌거나 이 8번 트램이 다니는 동네 이름을 댔어야지 벨기에라니. 나는 밀입국자의 범법행위를 응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안타까웠다. 내 호주머니 속 스위스 체류증이 마치 천국행 티켓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쥐고 이걸 잃어버리면 바로 지옥으로 끌려갈까 봐 무서워 손가락으로 딱딱하고 차가운 플라스틱 카드의 질감을 계속 확인했다. 그러나 천국행 티켓을 보여 줄 겨를도 없이 경찰들은 그 청년과 함께 내려 버렸고 트램은 유유히 라인 센터로 나아갔다. 어째서 더 확인하지 않았을까? 수상한 사람은 하루에 하나만 잡아 내면 된다는 할당량이 있어 그게 채워지면 족해서였을까? 남은 사람들 중에 그 청년의 피부색을 가지거나 그 청년처럼 낯선 느낌의 옷을 입은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걸친 옷과 내 피부색이 전달하는 그 강력한 무언의 메시지. 나는 굴러온 돌, 낯선 자. 작금에는 바이러스의 매개체일지도 모를 위험군.


곧 한국에서 엄마가 바젤에 다니러 온다. 이번에는 먹거리나 한국 서적 같은 걸 부탁하기보다 엄마가 어떻게 입고 와야 할지에 대한 긴 토의를 나누는 전화 통화를 했다.


"엄마, 형광색 아웃도어 패딩 같은 거 절대 입고 오지 마. 중국인인 줄 알아. 그리고 마스크는 기침 안 나면 하지 마. 여긴 예방 차원에서 한다고 생각 안 하고 이미 감염된 줄 알아. 스위스에 이미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겉옷을 입고 오란 말이야."

"그게 뭔데?"

"코트 같은 건데 무채색이면서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초라해 보이면 안 되고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 그러면서 그냥 풍경 속에 녹아들 수 있는 그런 옷을 입고 오란 말이야."

"그런 옷이 어딨어?"

그렇지...... 여기서 살면서 바젤의 바람이 묻고 바젤의 공기에 말리고 바젤의 트램에서 구겨지고 바젤의 흔적이 배어야 그런 옷이 만들어지는 거지. 세상에 그런 옷은 없다. 아무리 좋은 옷도 한국에 살던 사람을 스위스 살던 것처럼 보이게 할 옷은.


코로나 19 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과 아직은 감염자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외양으로는 구별 못할 현지인들과 함께 길을 걷고 트램을 탈 때 혹시 모를 불상사로부터 엄마를 보호해야 한단 생각에 잔소리를 하게 된다. 공포가 배제를 낳고, 배제가 자기 방어를 낳고, 자기 방어가 분노로 이어지고, 분노가 공포에 기름을 붓고, 또 공포가 배제를 낳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불안해서 어제와 같은 일상이 지옥으로 변해 버리는 우리에게 플라스틱이라도 좋으니 천국행 카드가 필요하다. 이 지옥에서 꺼내 줄 무언가가.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아직 초기라 스위스에는 감염자가 나오지 않아 외국인만이 그것에 감염될 수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오해의 시선이 있던 올해 초에 쓰였다. 지금 상황은 역전되어 중국은 자칭 코로나 청정국을 선포하고 확진자가 없음을 주장하며 한국은 철저한 방역으로 어느 정도 확진자 수를 통제하지만 유럽 전역은 재 확산기까지 맞아 주체할 수 없는 확진자 수에 급기야 실내 모든 공간에서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머니 속에 만져지는 마법 카드 한 장쯤 있었으면, 하는 불안과 공포감은 아직 나를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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