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떼언니 Oct 17. 2021

잠깐 맛 본 함정근무

업무 스트레스보다 배 멀미


첫 발령지 근무를 마치고 새롭게 발령받은 곳은 1,500톤급 대형 함정이었다. 

분명 오빠가 여경은 함정근무를 하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나는 함정으로 발령을 받았다. 


물론 나는 좀 늦게 발령받은 것이다. 

함께 인천으로 온 다른 중국어 특채 여경 동기들은 첫 발령지가 모두 함정이었다. 

훗날 나는 파출소를 거쳐 함정에 발령받은 것이 그나마 조직에 적응할 시간을 번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발령받은 함정은 경찰서에서 두 번째로 큰 함정이었다. 

여경이 탈 수 있는 함정은 3,000톤급 함정 1척, 그리고 1,500톤급 함정, 이렇게 2척이었다(지금은 500톤급 함정에도 후배들이 근무한다). 

우리 전에도 함정 근무를 한 여경이 있다. 3개월 순환 근무 차원이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를 뿐이다. 

우리는 순환 근무가 아니고 다음 정기 발령까지 근무해야 하는 정식 발령이었다. 


대형함정의 출동기간이 보통 7박 8일이었는데 7박 8일은 계획이고 언제든 유연하게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대형함정은 배타적 경제수역(EEZ)까지 근무를 나가는데, 그곳에는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다. 


여름 중간 발령을 받은 나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다. 

여름바다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고 할 정도로 파도가 잔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첫 출항부터 뱃멀미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함정 특유의 쇠 냄새, 기름 냄새 그리고 단절된 공간이 주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머리와 가슴을 조여왔다. 

머리는 어지럽고 속은 매스껍고 붕 떠 있는 듯한 몽롱한 기분에 외국어보다 더 외국어 같은 알 수 없는 전문용어, 긴장된 조타실 분위기, 책상이 아닌 조타기, 레이더 앞에 앉아 이것이 선박인지 섬인지도 구분하지 못한 채 바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선배들의 실없는 농담은 매스꺼운 속을 더 뒤집어 놓았고 쏟아지는 사적인 질문에 머리는 더 아파왔다. 

‘아무 말도 안 시켰으면 좋겠다.’ 

당직근무가 끝나면 재빨리 방으로 가 침대에 누웠다. 

화장실에 가는 것 빼고는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밥을 먹으면 더 울렁거려 식사를 자주 걸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 7~8월이 금어기(禁漁期)라 중국어선이 없었다는 것이다. 

불법 중국어선이 있었다면 작전을 해야 하고, 나는 중국어 특채였기에 당직시간이 아니어도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훗날 뼈저리게 알게 된 사실이다. 


내가 계속 근무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하던 중 뜻밖에 지원근무 발령이 났다. 

‘여름 특별수송기간 여객선 검문소 지원근무를 명함’ 

당시에는 여름철 성수기를 특별 수송 기간이라고 해서 검문소 근무 인력이 3배로 늘어났다. 

나는 경력직으로 지원근무를 받은 것이다. 

그렇게 짧은 함정근무의 쓴 맛을 보고 다시 검문소로 돌아온 나는 다시 함정 근무를 해야 한다면 이 업(業)을 계속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원근무자의 원적지는 정식 발령을 받은 곳이다. 

그러니 나의 원적지는 함정이었고, 특송(특별수송) 기간이 끝나면 함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여름 성수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출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