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베이 스프릿 호 해양오염사고
또다시 긴급 출동이다.
우리에게 ‘태안 기름 유출 사건’으로 알려진 바로 그 사고이다.
홍콩 선적 허베이 스프릿호와 삼성 중공업 소속 삼성 1호가 충돌하면서 총 12,547킬로 리터(78,918 배럴)의 원유가 청정해역을 자랑하던 우리나라 충청남도 태안 앞바다를 검게 물들였다.
긴급 출동 명령을 받고 도착한 사고 해역은 ‘처참’하였다.
짙푸른 바다는 새까만 기름층으로 뒤덮여 있었고 한참 멀리서도 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해양에서 기름 유출 사고는 종종 발생한다.
아주 적은 양이라도 바다에 유출된 기름은 경제적 손실은 물론 자연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까지 번지기 때문에 초동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출된 기름의 양과 처리 속도에 따라 원상 복구의 결과가 달라진다.
허베이 스프릿호의 기름 유출 사고는 상상 초월이었다.
사고 발행 후에도 파손된 부위로 기름이 계속 유출되고 있었고 조류가 심해 타르 찌꺼기가 군산까지 떠밀려 갔다.
사고가 발행한 12월은 매우 추운 날씨였다.
전국의 거의 모든 경비함정이 집결했고 전 직원은 방제복을 입은 채 양동이로 타르 덩어리를 떠올렸다.
경비함정 갑판 위는 타르를 담은 양동이 수십 개라 늘어져 있다.
해수면과 함정의 높이 차이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며칠 동안 기름 냄새에 노출되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기동복을 입고 그 위에 방제복을 입었지만 기름때는 피부를 파고들었고 작업이 끝나면 살갗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가렵고 따가웠다.
떠내도 떠내도 시커멓기만 한 바다를 망연자실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나는 결혼을 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새 신부였는데 잦은 출동으로 달콤한 신혼 생활은커녕 피곤에 찌들어 지내고 있었다.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신랑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가 해양경찰이 된 이상 감내해야 하는 ‘일상’ 임을 늦지 않게 알게 되었다.
가족이 아파도 집에 애경사가 생겨도 친구가 결혼을 해도 우리는 가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한다고 말하던 지인들도 결국 차츰차츰 멀어진다.
내 옆에는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하는 동료만 남아 있다.
벌써 사고가 발생한 지 십 년이 넘었다.
여전히 사고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모진 풍파 다 이겨내는 바다는 이번에도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지켜내고 있다.
더 추워지기 전에 태안 바닷가에 들려 소주 한 잔 기울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