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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y 28. 2021

아주 사소하고 내밀한 당신들의 권력





 공방 뒤엔 화장실로 가는 복도 같은 야외 공간이 있다. 작은 원룸? 크기 정도의 공간이다. 나는 이 공간을 다른 한 세입자와 나눠서 사용한다. 공방에서 화장실을 가려면 뒷문을 열고 나와 꼭 이곳을 지나야 한다.(공방-옆 가게-화장실의 순서로 문이 나 있다.) 공방 뒷문 앞에 앉으면 마을 입구가 훤히 보이고, 경치도 나름 좋았기 때문에 이발소 사장님은 자주 거기에 앉아 계셨다. 옛날 분이지만 최소한의 센스는 있으셔서 내가 뒷문의 잠금쇠를 푸는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일어나 이발소로 들어가시곤 했다. 최근 이발소 사장님이 건강상의 문제로 폐업하셔서, 다른 업종의 가게가 입점했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40-50대의 남자분 두 분이 사장님인 것 같았다. 뭐, 어디 사시는지, 결혼은 하셨는지, 장사는 얼마나 오래 하셨는지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고 인사만 몇 번 했다.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게 좋은 거니까.


 공방을 처음 열었을 때 나는 이발소 사장님과 그의 친구들이 자주 '그 공간'에 앉아 침을 뱉고, 담배를 피우고 크게 웃고 떠드는 소리를 접했다. 분명 나를 겁주려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지만 괜히 겁도 났고 불쾌했다. 아버지 철물점에서 수많은 아저씨들, 할아버지들에게 물건도 팔고 말동무도 해드렸던 나였지만,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자꾸 공방 뒤 테이블에 앉아 떠들고 무리 지어 있으니 손님들도 무슨 소리냐고 묻기도 했고, 신경도 쓰였다. 처음에는 대항의 의미로 뒷문을 열고 화장실을 갈 때 아저씨들을 더 쳐다봤다. 일부러 문을 더 열어 놓기도 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지만 나의 작은 투쟁은 계속되었다.


 이발소 아저씨가 너무 깔끔한 분이었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함께 쓰는 공용 화장실은 항상 청결했다. 이발소 아저씨는 보통 오전 6시쯤 가게를 여시고 주변을 빗자루로 청소하시고 화장실 청소를 하셨는데 나는 점심시간이 넘어 공방에 나왔기 때문에 화장실의 진짜 모습(?)을 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아저씨가 화장실을 청소하지 않자 엄청 큰 벌레가 나오기도 했고, 다른 상가 세입자들이 어떻게 화장실을 쓰는지를 너무 직접적으로 보게 되었다.  아저씨가 안 계신 지금, 화장실 바닥에는 흙 묻은 발자국이 가득하고 변기 커버에는 소변 자국이 있다. 대체 내가 왜 이런 꼴을 봐야 하지? 하는 생각에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야기 중에 남편이 한 이 말이 기억에 남았다. "옆에 있는 다른 건물의 화장실을 사용하는 게 어때?"


 나는 어떤 한 개인의 더러운 습관이랄지, 가정교육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몇 번 인사를 나눠보니 옆 아저씨들이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사소하고 내밀한 권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나의 공간이 될 수도 있었던 공방 뒤의 작은 땅은 이발소 아저씨, 이발소 아저씨 친구들, 그리고 새로 온 아저씨들에 의해 점령당했다.(지금도 새로 온 아저씨 둘은 공방 바로 뒷문 앞 공간에서 뭔가 수다를 떨고 있는데, 이 순간 뒷문을 열고 화장실을 가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된다. 이런 게 고민이라니. 이런 게 고민이 될 수 있다니.) 이건 너무나도 쉬운 계산이어서 보통의 시선으로 보면 여자인 내가, 더 깔끔 떠는 내가 다른 건물의 화장실로 가는 게 옳게 느껴진다. 마치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한다며 점령한 운동장을 피해 수돗가 근처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던 나의 초등학교 때가 생각나는 상황이다.


 어쨌든 제2의 성인 여성은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자체로 주인공일 수 없고, 제1의 성을 소유한 이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뭔가 해소된다는 느낌보다는 자꾸 짜증이 치민다. 나는 영롱한 노란 소변 방울을 피해 다른 건물로 가야 할까, 아무렇지 않게 닦고 거기에 앉아 내 일을 봐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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