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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r 13. 2022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하고 싶어

유축기 앞에서 나는 울었네

아이를 낳았다.


유도분만을 예약해 놓았지만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허둥지둥 병원으로 갔다. 출산을 앞두고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수천 개의 후기글을 봤지만 딱히 내 얘기라는 생각이 들진 않아서 겁을 먹진 않았다.


 자궁문이 차차 열리고 생전 처음 느끼는 고통이 배를 강타했다. 죽을 거 같은데 죽진 않는 이상한 고통이었다. 자궁문이 점차 열리고 마지막 단계. 무통주사로 마비된 하체가 말을 듣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내가 힘을 잘 못주니까 간호사 두 분이 배를 힘껏 눌렀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아이가 나왔다. 눈물이 터졌다. 무슨 의미의 눈물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 이거 나 혼자서는 절대 못했겠는데-하는 뒤늦은 두려움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출산 하루 뒤, 검사를 해보니 아기의 쇄골이 부러졌다고 했다. 아기가 커서인지 나오다가 부러졌다고 했다. 과호흡 증상도 약간 있었다. 머리는 콘헤드였다.


 워낙 건강한 체질이어서인지 회복도 빠르고 크게 아픈 곳도 없었다. 소변줄을 하루 꼽긴 했지만 자연분만을 해서 수술 당일에도 걸을 수 있긴 했다. 아기 쇄골도 시간이 흐르면 붙는다고 했고 과호흡 증상도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콘헤드도 시간이 지나면 동그래진다고 했다. 걱정할 게 없었다. 아기 보는 것도 잘할 자신이 있었다. 동생이랑도 7살 차이가 나서 엄마처럼 기저귀도 갈아주고 분유도 먹이고 잘 안아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기에게 좋은 건 다 해줘야지- 생각했다.


 막상 조리원 모자동실 시간이 되니 조금씩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원래 잘 떨지도 않고 긴장도 안 하는데 내가 배 아파서 낳은 내 아기는 내 마음대로 잘 안됐다. 젖을 잘 물고 있다가도 갑자기 고개를 흔들면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땀이 뻘뻘 나도록 울었다. 잘해야 되는데, 원래 잘하는 사람인데, 하는 마음으로 아기를 대하다 보니 더 급해졌다. 아기가 우는 소리가 복도에 계속 울리니까 조급해졌다. 어쨌든 아기는 잘못이 없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압박감은 커졌다. 남편은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평정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좋은 건데 괜히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내가 더 잘하는데-하는 심보 때문이었다.


 휴가가 끝나고 밀린 집안일과 출근 준비를 하러 조리원을 떠나 집에 간 남편에게서 우리 차분하게 잘해보자, 새로운 행복이 있을 거야, 수고했어, 사랑해 등의 격려하는 카톡들이 쏟아졌다. 남편의 카톡을 보며 조리원 유축기 앞에 앉아 젖을 짜며 엉엉 울었다. 나는 슬프지 않아. 나는 행복해. 아기의 탄생이 너무나도 기쁘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먼저 사랑받고 칭찬받고 싶은 이기적인 사람이다. 어쩌면 오늘의 눈물은 바로 그 아주 날것의 마음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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