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할, 페미니즘, 여성 인권에 대한 책들을 읽고 공부하면서 겸손한 마음보다는 저항, 비판적 사고,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더 많이 느껴졌다. 쉽게 짜증이났고 텔레비전을 보며 자주 욕을 했다. 사냥감을 찾듯 호기롭게 다수의 페미니즘 서적들을 탐독하던 나는 무릎을 탁 치며 크게 공감했고, 후에 출산을 하더라도 꼭 다시 일터로 복귀하겠다는 큰 결심을 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남성의 사회참여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가정을 돌보고 가계를 꾸리는 역할을 여성에게 떠맡겼다는 것, '엄마됨','모성'은 타고난게 아니라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고유 권한(?)으로 '학습'되었다는 것, 가부장제를 타파하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자꾸만 비장해졌다. 그즈음 어쩌다 보게된 윤여정 배우의 데뷔 50주년 파티 영상에서, 파티에 온 손님들 중, 별 다른 직업을 갖지 않은 '주부'는 단 한명도 없었는데 '주부'는 그 어떤 직함이나 업적도 될 수 없다는 두려움에 더욱더 내 자신을 채찍질해서 더 성장하고 더 많이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 가르치는 사람,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 뭔가를 하는사람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물밀듯 몰려왔다. 성실히 회사를 다니고 있을 남편은 앞으로 부장이든 뭐든 어떤 직함이든 가지고 있을텐데. 나는 뭐가 될까. 나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고민에 싸여있던 중 나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살면서 가장 잘 한일이있다면 나와 내 동생을 낳은거라고 말하시곤 한다. 분명 육아는 고되고,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소모적인 '노동'이지만 어머니에게는 큰 즐거움을 주는 행위였다. 그 말이 억지같이 들린적은 한번도 없다. 어머니는 우리 자매 뿐만 아니라 (주로 교회에서 만난)아기들을, 아이들을 진심으로 예뻐했고 사랑했다. 신기하게 아이들도 어머니를 잘 따랐다. 어머니는 엄마로 살았던 당신의 삶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이었다.(지금은 내가 결혼해서 본가를 떠났고, 동생도 다 컸으니 과거형을 사용했다.) 물론 '모성'이 학습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와중에 따뜻함과 친절함을 타고난 엄마들도 있을것이 아닌가. 정말 육아가 행복하고, 주부인 내 삶에 만족하는 그런 엄마들, 기혼 여성들이 당연히 있지 않을까. 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너무 예뻐서 나의 경력, 사회 생활, 그 어떤것도 하고싶지 않으면 어쩌지.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 외에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백수면서 여전히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까. 주부로, 엄마의 역할로 만족하고 순응하는 (미래의)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가질 수 있을까. 모든걸 박차고 나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운동하고, 노동하고, 참여하는 엄마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로 보일까. 혼자 지레 겁을 먹었다.
우리 엄마를 위한 페미니즘이 있을까. 어떠한 목소리도, 업적도, 경력도 없는 사람을 위한 페미니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