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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ul 07. 2022

나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결혼 4년 차, 남편과는 사이가 좋다. '가화만사성'이라고, 남편과 사이가 좋으면 다 좋은 줄 알았다.(물론 어떤 면에서는 맞는 얘기다.) 몇 년 전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가까운 친구들과 다툼이 있었다. 잘잘못을 따질만한 일이라기보다 서로 입장 차이가 있어서 얼마만큼 배려하고 이해하느냐의 문제였는데, 아무래도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친구들이다 보니 거의 하루 종일 그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서운했다가- 괜히 미안했다가- 다시 서운해지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내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그때 문득 '남편과만 사이가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에 '나에게 피로감을 주는 관계는 그냥 끊어버려야 되나?'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결과적으로 친구들도 나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어찌어찌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조금씩 영향을 받는 내가 싫었다.


 아기를 낳고는 동생과 어머니가(시어머니 아님. 나는 엄마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래 왔다.) 자주 우리 집에 온다. 혼자 아기를 볼 땐 아기가 잠에서 깨거나 울까 봐 목욕도 조심스럽게 하는데, 어머니나 동생이 오면 아무래도 아기를 봐줄 수 있으니까 목욕도 편하게 한다. 어느 날 목욕을 하고 옷을 입고 있는 나에게 동생이 와서 "얼굴에 로션 좀 발라."라고 하며 자기 손에 로션을 짜서 나를 따라다니며 발라주었다. 그때 느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구나. 남편이 나에게 "로션을 바르라"며 신경 써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남편은 끊임없이 나의 긍정적인 면만을 보고 칭찬해주는 반면, 어머니는 비판적인 태도로 나의 변화에 대해 잔소리를 한다.(살쪘다고...) 남편은 내가 피자와 치킨을 좋아하는 모습을 귀여워하고 같이 맛있게 먹지만, 어머니는 몸에 좋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와 먹인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이전의 모습을 잘 알지 못하기에 오래전 추억들을 함께 회상할 수는 없지만, 오래된 친구들은 옛날 얘기를 하며 몇 시간도 수다를 떨 수 있다. 나의 친구들은 나의 가장 사적인 모습이나 사소한 습관을 알지 못하지만, 남편은 그 누구보다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나'라는 사람의 유니버스를 만드는구나 싶었다. 물론 내가 맺는 수많은 관계 중에 더 중요한 관계들이 있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 '나'를 키우려면 아직도 마을 하나가 필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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