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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Dec 29. 2021

인생의 다음 국면을 앞두고

어느 임산부의 소회



 임산부의 삶.


 이 다섯 글자를 적고 나니 실제 나의 삶 보다 훨씬 납작하게 느껴진다. 원래 뭔가 강박증이 올라오면, 일부러라도 그 특정 행동을 피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임신을 하고 나서부터는 더 그래 왔다. 나는 이제 엄마니까, 뱃속에 아기가 있으니까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해, 가령 좋은 것만 봐야 해, 좋은 생각만 해야 해,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해, 매일 어떤 좋은 것들을 느끼고 접해야 해 하는 그런 생각들을 초반에 하기도 했는데 결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느낄 죄책감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보니 임신 기간 동안 일상적으로 해온 행동은 변비를 피하기 위해 아침에 유산균과 요거트를 먹는 게 전부였다.


 2021년 12월 말 현재 나는 임신 8개월을 막 지나고 있다. 임산부의 삶과 신체적, 감정적 변화는 사실 그것을 겪지 않을 일반인들에게는 그렇게 큰 상관이 없는 화제이기 때문에 나조차도 사실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임산부석에 앉지 않고 양보도 잘하고, 그냥 단순하게 난임을 겪는 여성들이, 부부가 어떤 어려움을 가지는지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진 않았다. 어쨌든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임신 초기에는 남편 몰래 무거운 것도 잘 들고 다니고, 약간 무리다 싶은 선까지 이런저런 활동을 하기도 하고 설거지도 요리도 집안일도 더 많이 하려고 했다. 이렇다 할 입덧이 없었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많았고 잘 먹기도 했다. 초반엔 그랬다. 하지만 임신 20주가 지나면서 나름의 신체적 평온함(?)은 모두 과거의 일이 되었다. 나는 앞, 뒤, 양 옆 어디에서 봐도 불룩 나온 산모의 배를 가지게 되었다. 왼쪽으로 누워도, 오른쪽으로 누워도, 정면을 보고 누워도 잘 때 너무 괴로웠다. 내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굴리는 동안 아기는 괜찮을까-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신체적 변화에 대한 좌절감은 물론이고 감정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꼭 호르몬 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다. 내 몸에 자리 잡은 이 작은 생명을 지켜야만 한다는 (소시민에게 주어진 것 치고는 꽤 거대한 임무)를 부여받게 된 이상 자연스레 드는 근심 같은 거였다. 아무리 다른 산모들과 산부인과 의사들이 괜찮다고 했었어도, 수많은 블로그 글과 기사들을 읽고 난 후에도, 커피를 마시면서, 회를 먹으면서, 초밥을 입에 넣으면서 그런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냥 아기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직후부터, 마치 비염처럼, 초반에는 아기가 유산될까 봐, 중기 이후부터는 조산할까 봐 두려움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피 고임, 피 비침, 갈색 혈, 임신성 당뇨, 기형아 검사 등 아기를 품고 있는 약 40주 동안에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임신은 고된 인내를 동반한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인간 삶의 불확실성이 '근심'이란 걸 포기할 수 없게 만든다.


 내 마음은 유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아기는 엄마의 생각보다 강하고 튼튼하다는 것 하나로 결국 8개월까지 잘 버틴 것 같다. 아직 아기가 세상에 나오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직전까지 내 임신 기간을 지배하는 단어가 '근심, ' '두려움'같은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평온한 마음을 가져보려고 한다. 왜 아기가 나오기까지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는데, 물론 뭐 의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이유가 있겠지만, 천둥벌거숭이 같은 두 사람에게 엄마 됨과 아빠 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시간을 주려고 그런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뭔가 싱숭생숭하다. 아기를 낳은 후에 나의 삶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 단순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바로 앞에 놓여있다. 도망치지 않는 것, 압도되지 않는 것, 누가 나에게 무엇을 선사하던지 간에 굳게 서서 나무처럼 내 삶을 살아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한다.


 아가야, 이렇게 구구절절 이 말 저 말 써놨지만 어쨌든 엄마는 너를 많이 사랑해.

 우리 곧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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