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Apr 19. 2021

아이들이 뭔 죄에요(2)-프레임 양육

 나보다 7살 어린 내 동생은 똑똑한 아이였다. 한글도 일찌감치 떼고, 6살 때는 유치원 선생님이 월반(?)을 권하셔서 7살 반에서 언니 오빠들과 함께 수학했다(?). 동생은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차분했고, 호불호가 명확했고, 어느 겨울날 함께 유치원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어머니가 추울까 봐 “어머니, 추우니까 먼저 들어가세요.”등 고된 육아에 큰 기쁨을 주는 감동적인 문구들을 선사하는 그런 아이였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유언 같은 말씀을 남기셨는데, 둘째는 꼭 판사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그 한 마디 말을 마치 위대한 예언처럼 자주 말하셨다. 5학년 때, 동생은 전 과목 100점을 맞아서 어머니 아버지께 큰 기쁨을 안겼다. 할아버지의 예언은 동생이 뭔가를 성취할 때마다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쟤는 큰 사람이 될 거야. 쟤는 뭔가 해낼 거야. 쟤는 달라.    


 동생은 초등학교 때까지 어느 정도 어머니의 계획에 협조해주는 듯했다.(아버지는 사실 대부분 반대했다. 하기 싫으면 시키지 말라는 입장이셨다. 근데 동생을 생각해서라기보다는, 필요 없는 부분에서 지출이 커진다는 느낌으로 반대하셨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턴 많이 힘들어했다. 동생의 가능성에 어머니의 투자가 시작되면서 동생은 힘들다고 소문난 영어 과외 공부방에 들어가게 됐다. 지금이야 우스갯소리로, 그때 해리포터 원서를 읽고 외우면서 자신의 영어실력이 향상됐다고 말하지만 그때 동생은 그 공부방을, 그 과외 교사를 증오했다. 그 교사는 방대한 양의 숙제를 내주고 할당된 양을 다 해내지 못하면 언제까지고 공부방에 남기거나 체벌을 하기도 했다. 동생은 울면서 그 공부방에 가고 울면서 나왔다. 동생은 어머니에게 '가기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가르쳐야하는 줄 아셨다. 그 후로 동생은, 단적으로 말하면, 공부를 싫어하게 되었다. 공부의 맛을 알기도 전에 동생은 이미 지쳐버린 후였다.    


 최근 함께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중학생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초등학생 때 기초를 많이 잡아두지 않아서 모르는 단어도 많고 문법도 약하다. 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고, 수업 내용도 잘 따라온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친구이다. 그렇지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부모님한테 ‘너는 머리가 나쁘다.’ ‘너는 목표가 없어서 어떡할래?’‘너 서울에 있는 대학교 못 가면 대학 안 보내고 공장으로 보내버린다’와 같은 말을 벌써부터 많이 듣고 있다고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중학교 때 원대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매진하는 사람이 대체 이 지구에 몇 명이나 될까. 그 친구와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라는 결심으로 열심히 중간고사를 준비하고 있다.    


 부모들은 자신이 자녀들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한다. 딸의 입장에서, 과외 선생님의 입장에서,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80% 이상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잘 아는 것, 더 나아가 아이들의 재능을 아는 것과, 아이들의 미래를 정해놓고 그 틀에 맞춘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아이들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가끔 학부모님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이 마음처럼 쉽게 안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아이들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정말 솔직한 마음으로, 모든 부모님들께 묻고 싶다. 정말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나요? 정말 아이들의 온전한 독립을 바라나요? 아이들의 행복을 바란다고는 하지만, 혹시, 그 안에는 ‘자식 잘 키웠다’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닌가요?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의 마음으로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라고. 물론, 이 사회는 ‘아이들이 어떠한 학력이나 직업 없이 주류 사회에 편입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모들의 불안감이 크기 때문에 아이들을 더 다그치게 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부모의 최우선순위는 아이들의 건강과 안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모들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행여 아이들이 사랑받지 못할까, 이 사회에서 쓰임 받지 못할까, 낙오자가 될까 지레 마음을 졸이고 아이들에게 분노를 쏟아붓지 말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마음껏 비빌 언덕이 되어주면 좋겠다.   

이전 04화 아이들이 뭔 죄에요(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