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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Oct 21. 2020

저출산을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임신 준비부터 시작되는 임신부의 삶

 경미한 턱 디스크와 목 디스크 증세가 있기 때문에 자주 머리가 아프다. 특히 왼쪽 목 뒤를 타고 머리통까지 지끈지끈 통증이 계속되는 날이면, 아무것도 못하겠고 의지도 없고 힘도 없다. 그런 날이 한 달에 한 번은 되는 것 같은데 나의 증상에 잘 듣는 약은 임신부가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는, 약을 못 먹는 게 제약이 될 때가 많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체기가 있어 밤새 구토를 했던 적이 있었다. 5번 정도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씨름을 했다. 평소엔 구토하고 물 마시고 좀 누워있으면 잠도 잘 오고 그랬는데 그날따라 계속 속이 메스꺼웠다. 남편이 응급실에 가자고 해서 비몽사몽 응급실에 가 진찰을 받았다. 당직 의사분께서 어떤 주사를 처방해주시며 "임신 가능성 없으시죠?"라고 물으시길래 어물쩡 "네...." 했는데 그 말이 너무 신경 쓰였다. 주사를 맞고, 응급실 밖을 나서면서도 혹시 내가 임신했는데 주사를 맞은 거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며칠 후 산부인과에 갔다.


 다행히 나는 임신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산부인과 선생님은 내 말을 들으시더니 그 약은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고 하셨다. 그제야 나는 안심했다.


 오늘도 머리가 아프지만, 나는 왜인지 두통약을 먹을 수가 없다. 혹여나 임신한 상태에서 먹은 약이나 건강하지 못한 음식들이 작은 수정란(?) 친구에게 어떤 나쁜 영향이라도 미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임신부의 삶은 아이가 뱃속에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어떤 시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월 임신일까 아닐까 마음을 졸이며, 아무리 머리가 아프고 생리통이 심해도 그 작은 약 한 알도 고민하며 먹고, 어떤 영양제가 좋은지, 왜 임신이 안되는지 고민하는 이 모든 순간. 우리는 이미 엄마인 것만 같다.


 나는 아기를 가지고 싶고, 또 임신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지만 임신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 너무나도 공감한다. 물론 임신을 원치 않는 데엔 많은 개인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에 걸렸던 것은 개인적인 이유보다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인식이다. 일단 일반적으로 임신이나 출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임신부가 배려받아야 한다는 인식도 아직 한참 부족하며, 현대 사회에 노 키즈존이라는 미개한 차별의 수단이 존재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토록 힘들게 목숨을 걸어 낳은(모성 사망률이라는 수치가 있다.) 아이가 존중받지 못하고 특정 장소에서는 천덕꾸러기가 되는 데다 낳아도 돌봄을 받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데, 낳아서 기르는 것 자체가 모험이 되어버리는 이때에 저출산 타파에만 혈안이 되어 여성을 옭아매는 기사들,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한심하게 여겨질 뿐이다. 인과관계만 본다면 아이를 낳지 않겠다 하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다.


 임신이나 출산에 대해서도 이미 많은 글이 있지만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민, 어쨌든 생물학적으로 남편과 다르기 때문에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어려움에 대해 더 다양한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여성들이 임신하기 위해 매달 시술을 하고, 몇 시간 거리의 산부인과를 찾아간다. 임신이라는 게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절박하다. 저출산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이미 낳은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어야 하겠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시각부터가 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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