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Mar 11. 2021

아이들이 뭔 죄에요(1)

 아기들을 좋아한다. 예전에도 그랬다. 하지만 내 동생의 아기 사랑은 남달랐다. 동생은 교회에서 꽤 오래 유치부 선생님으로 봉사했다. 동생은 오래 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던 이휘재, 문정원 씨의 쌍둥이 아들 서언이와 서준이를 굉장히 예뻐했다. 새로운 짤이나 영상이 있으면 나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나는 동생이 그냥 귀여워서 아기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동생도 6-7년 동안 유치부 선생님을 하면서 깨달은 게 많은 듯했다. "언니, 아무래도 인간의 악함을 감추려고 신이 귀여움을 주신 거 같아. 아이들은 정말 이기적이고 사악해. 근데 너무 귀여워."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몇 년 전 사촌 오빠네 놀러 갔던 적이 있다. 사촌오빠는 결혼해서 이미 두 명의 아이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자매는 그 두 조카를 너무 예뻐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볼 생각에 신났던 기억이 난다. 오빠네 집에 가려고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온 가족이 섰다. 이미 해가 진 7시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 때, 엘리베이터 옆 계단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아이가 훌쩍이고 있었다. 어째서 혼자 저렇게 울고 있을까 싶어 아이를 불렀다. 아이가 천천히 손잡이를 붙잡고 우리가 있는 1층 쪽으로 내려왔다. 아이는 5-6살 정도 되어 보였고 손에 작은 수첩을 들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어디 가셨냐 물어보니, 엄마는 일하러 가셨고 아빠는 친구 만나러 갔다고 했다. 형은 태권도 학원에서 안 왔다고 했다. 우리는 도저히 울고 있는 아이를 두고 그냥 올라갈 수 없었다. 아이가 손에 든 수첩은 일종의 비상연락망 같은 것으로, 엄마 아빠 형의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있었다. 동생은 아이의 수첩에 적힌 번호를 보고 전화를 차례로 돌렸다. 엄마- 받지 않았다. 아빠- 받지 않았다. 형- 받지 않았다. 엄마가 일 하고 있다고 했으니 아빠는 받을까 싶어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가까스로 통화가 되었다. 동생은 아이 혼자 계단에서 혼자 울고 있지 않냐, 언제 들어오시냐 등등의 질문을 했고, 곧 오겠다는 애기 아빠의 확답을 받아낸 후에야 한마디를 보탰다. "다시는 애기 혼자 두고 나가지 마세요." 우리는 아빠가 곧 오신다는 얘기를 아이에게 전하고, 집에 들어가서 문 잠그고 있으라고 하며 올려 보냈다.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동생은 당시 20대 초반이었다. 오글거려서 동생에게 직접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동생이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귀여운 동화 속의 요정이나 전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기 부모에게 직접 "아기를 두고 나가지 말라"라는 말을 할 수 있다니. 동생의 단호함에 애기 아빠도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도 우습다. 물론 그 사건 하나만으로 그 가정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아이가 얼마나 큰 불안감을 느끼며 문을 열고 직접 밖으로 나왔는지는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린이들이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시간, 며칠 동안 어른 없이, 적당한 안전망과 보호 없이 방치되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매일같이 학대당하는 어린이들의 기사를 접한다. 마음이 아프다. 작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대체 왜 어른의 방임, 무지, 폭력으로 고통받아야 하는가. 아이에게 폭력을 가한 한 개인에게만 모든 분노와 시선을 던질것이 아니라, 비슷한 비극이 또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동학대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 뿐만 아니라, 피해 아동을 가해자로부터 안전하게 격리하고, 또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랄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은 분노 그 이상의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아이들이 더욱 더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전 03화 저출산을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