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Jul 27. 2022

비장함은 비장함일 뿐

하면 된다... 안 될 수도... 근데 일단 하자

 여름이라 다용도실의 창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방충망만 둔 채. 그런데 그저께, 아기를 거실에 눕히고 다용도실 흐릿한 새시를 보는데(다용도실 문이 따로 없고 반투명 유리 새시로 되어있다) 웬 손톱만 한 검은 물체가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처음엔 뭐야 싶어서 별생각 없이 문을 딱 열었는데- 귀여운 꿀벌 말고 그것보다는 생김새가 조금 더 무시무시한 벌(후에 찾아보니 쌍살벌이라고 함) 6-7마리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너무 놀라서 일단 문을 후다닥 닫고 나왔다. 빨래도 돌려야 되고 건조기도 돌려야 되고 다용도실에서 다용도로 할 일이 되게 많은데 벌들이 죽치고 있어 가지고 너무 짜증이 났고, 혹시나 잘못해서 벌이 집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기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무서웠고, 물릴까 봐 그것도 겁이 났다. 회사에 있는 남편과 계속 카톡을 했지만 어쨌든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벌들을 쫓기로 했다. 그 사이에 집이라도 지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긴팔 잠옷까지 걸쳐 입고, 전기 파리채를 들고, 문을 후다닥 열어서 다용도실에 들어가자마자 탁- 닫았다. 바깥 창문을 열고 파리채를 휘두르며 훠이훠이 쫓아냈다. 그 와중에 안 나가는 눈치가 없는 녀석 둘은 어쩔 수 없이 에프킬라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다용도실 창이 좀 오래되긴 했는데 그래도 구멍만 막으면 되겠지 하고 한쪽 구멍을 막았다.


 설마 들어오겠어- 생각하고 있던 다음날, 검은 실루엣이 새시를 가로질러 비행하고 있었다. 비슷하게 6-7마리. 너무너무 소름이 돋았지만 어쩌겠어 또 내가 쫓는다! 비장한 마음으로 새시 문을 여러 번 열었다 닫았다 했다. 무서워서. 위와 비슷한 마음으로. 혹시나 물릴까 봐. 아기가 물릴까 봐. 심호흡을 하고 나갔다. 아마 방충망의 다른 구멍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자꾸 들어오려는 이 불청객들을 쫓아내고 창문을 잠갔다.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와 방충망에 붙어있던 비어있는 벌집(아마 굉장히 오래된 헌 집으로 추정됨)을 떼어내고 다른 구멍에도 테이핑을 하고 빈틈에도 테이프를 붙였다. 내일은 안 들어올 거야! 하지만 뭔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마음속으로는 '저 자식들 뭐 드론 같은 거 아니야?'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벌들이 너무 집요하고 똑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망의 오늘. 벌들은 들어왔을까 안 들어왔을까. 들어왔다.


 이번에는 내가 선제적으로 먼저 새시 문을 열었는데, 한 마리는 이미 자기네 집 마냥 들어와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두꺼운 유리창 두 개 사이에 껴 있었다. 너무 놀라서 나는 에프킬라를 난사했고, 그렇게 3일 차 쌍살전투는 끝이 났다. 아니, 끝인가? 어떻게 보면 내가 이긴듯하지만 전투 중 뿌려댄 에프킬라 상당량이 내 호흡기로 들어온 것처럼 목도 칼칼하고 이상하고 찜찜하다.


 이런 일을 겪으며 비장함이라는 감정?이라고 해야 하나, 무튼 마음의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벌들이 침입해온 첫날, 나가야 돼 말아야 돼 마음을 졸이며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었다. 결국 문을 열고 벌들을 쫓아냈지만 비장한 마음은 그저 마음일 뿐이었다. 나의 실천에 동력을 준건 나의 필요,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 혹은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함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 더 명확해진 것 같다. 쌍살대첩 덕분에.    

작가의 이전글 아무것도 되지 않더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