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지 Jul 21. 2022

내일을 기다리는 엄마

낯가림보다 외로움이 더 문제였다

“내일 올 거지?”

현관문을 나서는 요양사 선생님에게 엄마가 묻는다.

치매를 앓고 계시기에 조금만 지나면 누가 왔다 갔는지도 잊어버리지만, 지금 떠나는 요양사가 섭섭하고 그래서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표현 것이다. 다행이다.


방문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센터를 검색하다 ‘사회서비스원’이라는 곳을 알게 됐다. 정부가 설립한 ‘통합 돌봄 서비스’ 기관으로 광역자치단체 4곳에서 시범 운영 중이었다(현재는 14개 지방정부에 사회서비스원이 설립됐다). 이 사회서비스원 산하에 종합재가센터가 있다. 공공기관이라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기에 가끔 뉴스에 등장하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덜할 것 같았다. 요양사의 고용도 안정적이라 사람이 자주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치매를 앓는 엄마에겐 그게 중요했다. 다행히 상담 후 바로 방문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엄마랑 함께 하는 프로그램(사실상 놀아드리기)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때 만난 엄마의 첫 요양사 선생님은 요양원에서 다년간 일한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엄마를 많이 웃게 해 주었고, 매일 헤어질 때마다 꼬옥 안아드렸다. 엄마가 어린아이처럼 안겨서 웃고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애들은 속으로 예뻐하는 거”라며 스킨십을 자제(!)했던 엄마. 그렇게 자란 자식들 역시 엄마 손이나 잡아드렸지 그렇게 살갑게 얘기하고 안아드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요양사 선생님과 퍼즐 놀이를 하고 화투를 쳤다. 요양사는 엄마가 색칠한 그림을 칭찬하며 매일매일 벽에 붙여 놓았고, 엄마가 좋아할 만한 책을 읽어드렸다. 집에만 계시는 엄마에게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날씨가 좋은 날엔 엄마와 동네 한 바퀴 산책도 했다. 요양사 선생님은 산책길에 엄마와 함께 찍은 셀카를 자주 보내줬다. 근심이 가득한 듯 어둡던 엄마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요양사는 트로트 음악을 들려드리며 엄마의 취향을 찾아나갔다. 기분이 좋은 날엔 엄마가 음악에 맞춰 춤도 추신다고 했다. 엄마가 흥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요양사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됐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엄마가 이 노래를 특히 좋아하신다고 했다. 아무래도 난, 엄마를 제대로 몰랐던 게 확실하다.


재가센터 담당자와 요양사 선생님이 처음 방문한 날이 생각난다. 난 엄마가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지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낯선 누군가가 당신 집에 오는 건 처음인데 엄마가 과연 받아들이실지 걱정된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남과 쉽게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라고, 의심이 많은 분이라고, 당분간 낯가리실 거라고 덧붙였다.  


그야말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엄마는 요양사 선생님 말씀을 아주 잘 들었고, “고마워”라는 외교적 언사도 아끼지 않았다.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에겐, 당신과 함께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산책할 ‘사람’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첫 번째 요양사 선생님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어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다. 이분 역시 치매 어르신을 돌본 경험이 많다고 했다. 기본적인 활동 내용은 비슷한데 이 선생님은 엄마에게 역할 놀이를 많이 시키고 사진을 많이 찍어 주었다.


엄마는 요양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온갖 포즈를 취다. 삶은 달걀을 양손에 들고 귀여운 표정을 짓기도 하고, 식탁에 앉아 책 읽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학교 가는 학생처럼 가방을 둘러메는가 하면, 어떤 날은 나들이 가는 듯 머플러를 하고 멋진 모자를 썼다. 처음엔 이게 다 뭔가 싶었는데, 사진 속 엄마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당신도 즐거우신 것 같았다. 돌봄 서비스를 받은 하루 3시간은 너무도 짧았지만 엄마가 그렇게 밝은 기운을 얻고 웃을 수 있어 감사했다. 엄마가 내일을 기다린 이유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요양사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도 엄마가 정말 ‘착한 치매’라며, 보호자인 나를 위로해 주다. 돌봄 노동이 결코 쉽지 않음에도 사랑으로 엄마를 보살펴 주었다. 엄마가 내일도 오냐고 물었던 말이 맘에 걸린다며, 쉬는 날인데도 잠깐 시간을 내 들러 주다.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엄마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고, 부딪히거나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없는지 자세히 살피, 가끔 용변 처리가 잘 안될 때도 대수롭지 않은 듯 깨끗하게 처리해 주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렇게 좋은 요양사 선생님들을 만난 건 엄마의 복이지 싶다. 요양원에 들어가실 때까지 1년 6개월 동안, 엄마는 당신을 위해 놀아주고 집중하는 전문가의 돌봄을 편안히 받아들였다.

이전 03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를 목욕시켜 드린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