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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ug 04. 2022

세상은 돌봄을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위로가 필요했다

엄마가 오랜동안 병석에 계신 친구 K가 있다.

예전의 나는 “어떡하니…, 힘들겠다….”라는 말밖에 하지 못 했다.

친정에 있던 어느 날, K의 얼굴이 스쳤다. 마음이 많이 힘든 날이었다. K에게 전화를 걸었다.

“K야, 너는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 왔니? 오늘 아침에 갑자기 네 생각이 나더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차고 넘쳤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답답해 죽겠어…, 힘들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를 K와 길게 나눴다.


K는 내 얘기를 찬찬히 들어주고 위로해 줬다.

“친정에 있다가 집에 돌아가거든 의식적으로라도 엄마 걱정은 접어 둬. 그래야 다음에 또 엄마를 돌볼 힘이 생겨. 이건 긴 마라톤 같은 거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네가 건강해야 해. 그리고 요양사 있을 땐 너도 운동하러 나가거나 카페에 가 있어. 잠깐이라도 쉬는 게 중요해.”

K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은 ‘돌봄’을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치매를 앓고 계신 엄마는 밤에 주무시다가도 몇 번씩 깼다.

워낙 어려웠던 시절을 겪으셔서 그런지 엄마에게 제일 중요한 건 ‘밥’이다.  

“밥 누가 줄 거냐?” “쌀은 있냐?” 낮에도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시지만, 한밤중에도 그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밤 깊은 시각, 엄마는 밥을 하신다며 쌀포대를 찾았고, 잠에서 깨면 습관처럼 전기밥솥을 여닫았다. 전기밥솥에서 울리는 “띠리링~ 철컥!” 소리가  밤새 이어졌다.

누가 왔다고 생각해선지, 엄마는 내가 자고 있는 방 문도 벌컥벌컥 열었다. 할 수 없이 문을 잠그면 손잡이를 이리저리 돌리니 그것도 못할 일이었다. 매일매일 깊은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아버지마저 아프셔 정신없는 와중에 요양사 파업이 시작됐다. 사실 ‘돌봄’은 멈출 수 없는 현실인데, 고용 안정을 요구하는 요양사들을 지지하고 싶었다. 재가센터에서 대체 요양사를 보내준다는데도 거절했다. 그러나 나의 ‘의식’과, 내가 헤쳐나가야 할 ‘현실’의 갭은 너무도 컸다. 친정 집을 수리하느라 우리집에서 부모님을 모시며 40일간 독박 돌봄을 한 직후였기에 나는 지쳐 있었다. 다행히 파업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불안정한 돌봄을 ‘땜빵’하는 일은 힘겨웠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힘들었다. 사실 그때 난 내가 자초한 일로 버거워하고 있었다. 내가 친정에 있을 때만이라도 요양사를 위해 점심 식사를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친정에 가는 빈도수가 늘어나면서 부담스러워졌다. 국이랑 계란 프라이를 좋아하는 엄마의 단순한 식단과 달리, 특별한 뭔가를 따로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밖에 나갔다가 점심을 차리러 부랴부랴 들어와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돼버렸다. 괜찮다고, 어차피 나도 먹어야 한다고, 선생님은 엄마만 잘 보살펴 달라고 한 내 말에 스스로 갇히고 말았다. 이래저래 돌봄이 극한 직업처럼 느껴지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뒤늦게야 깨달았다. 요양사와 보호자의 관계도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주 만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요양사라는 직업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지만, 가까워질수록 정작 필요한 요구 사항들을 말하기는 껄끄러웠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재가센터는 조직 운영마저 불안해 보였다.

치매 돌봄 서비스를 신청한 것도 처음, 엄마의 보호자가 된 것도 처음이라 나는 허둥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엄마가 질 좋은 서비스를 받고 있느냐인데, 내가 지엽적인 문제들에 매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K의 조언을 들으며 마음을 추슬렀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니 행복했다. 공간이 주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에 감사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그동안 못 읽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피아노를 쳤다. 숨통이 트였다.   

문득 아이들을 키울 때처럼, 치매에 걸린 엄마를 위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에 관한 책과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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