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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ug 13. 2022

치매에 걸린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다

엄마는 말씀이 많 분이었다.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고, TV를 보면서도 계속 감정 이입하며 추임새를 넣는 분이었다.

“아이고 엄마, 저번에 했던 얘기잖아.”

“엄마, TV 보게 가만히 좀 계세요. 엄마 얘기 때문에 뭔 소린지 안 들리잖아.”

난 엄마가 연세 드실수록 점점 말씀이 많아질까 봐 걱정이었다.


그런데 치매는 엄마에게서 말을 앗아갔다. 무엇을 물어봐도 엄마는 모른다고 했다.

당신 자신에게 속삭이듯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수십 번 중얼중얼하고, 아무도 없는 욕실에서 “그랬어?” “응….” 하며  혼잣말을 주고받는 게 다였다.

TV가 켜져 있어도 화면만 응시할 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 시계를 쳐다보며 아침, 점심, 저녁 드실 시간만을 기다렸다.

엄마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공포처럼 인식되는 치매라는 병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기에 나는 두려웠다.  

치매 약을 먹어도 치유는 어렵고, 그저 더 악화되는 걸 늦출 뿐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대체 약효가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앞으로 더 좋을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대체 엄마가 어쩌다, 왜, 저렇게 돼 버렸는지 원망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꽉 막힌 현실을 탓할 수만은 없었다. 무엇보다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다. 엄마를 돌보려면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와 관련된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 힘든 시간들을 기록한 글과 영상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인상적이었던 세 권의 책과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가노코 히로후미, 이정환, 푸른숲, 2017

혼자 지낼 수 없는 한 치매 노인이 요양시설에 들어가기를 강력히 거부한다. 내 집에서 죽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일본의 특별한 노인요양시설인 ‘다쿠로쇼(자택) 요리아이(요양)’는 이 할머니의 고집에서 시작됐다.


기존의 ‘요양시설’ 말고, 할머니가 원하는 편안한 ‘집’ 같은 공간이 필요했다. 이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은 십시일반 모금에 나서고, 수제잼을 만들어 팔고, 지역 주민들을 설득한다. 그리고 마침내 오래된 집을 마련해 치매 노인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의 요양원을 만든다.


☞ 노인요양시설이 기피시설로 인식되는 현실 속에서, 저자는 요양원이야말로 외따로이 있는 격리 공간이 아니라 어르신이 살던 동네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치매 노인 역시 더불어 함께 사는 삶, 품위 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이다.

“‘요리아이’는 간병을 지역사회의 몫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늙어서도 익숙한 장소에서 살려면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자연스러운 형식으로 연결하고 낯익은 사람을 늘림으로써 ‘어려울 때는 서로 돕는’ 안전망을 만들어 두려는 것이다.” (304쪽)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노부토모 나오코, 최윤영, 시공사, 2021

다큐멘터리 영상 감독으로 일하는 저자의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는다. 85세였다. 귀가 어두운 93세 아버지가 엄마를 돌본다. 멀리 사는 외동딸은 고민한다. ‘일을 그만두고 내려와야 하나….’


오래전부터 부모님 영상을 담아 왔던 딸은 치매로 부모님의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다큐멘터리로 만들게 된다. 2025년이 되면 일본에 사는 65세 이상 인구 다섯 명 중에 한 명이 치매 환자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반영하듯,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응원을 보내온다.


딸에게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는 아버지는, 누구의 신세도 지고 싶지 않다며 한사코 거부하던 간병 서비스를 받기로 한다. 그리고 아내가 눈을 감을 때까지 돌봄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 비교적 예쁜 치매라지만, 엄마의 과거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괴롭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엄마가 더 불안하고 절망스러울 것이라고, 엄마는 자식이 인간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마지막 육아’를 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치매 진단과 엄마의 변화, 간병을 하면서 느낀 솔직한 심정들이 마치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엄마뿐 아니라 치매 환자에게는 모두 저마다 활약하던 옛 시절이 있다.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존경받던 과거가 있다. 치매로 변해버려도 그건 병의 증상일 뿐이지 그 사람 자체가 변해버린 건 아니다. (39쪽)


작별일기 - 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 최현숙, 후마니타스, 2019

요양보호사이자 사회복지사, 그리고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왔던 저자가 엄마 이야기를 썼다.


여장부 같던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 다른 보호자와 달리 딸은 치매라는 병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중간중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인지 능력 높인다고 괜히 치매 환자에게 어려운 질문을 하거나 문제 행동을 지적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되레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우울해진다는 것이다. 요양원을 찾는다면 ‘노인 수용소’ 같은 대형 시설 말고 노인수 30인 이하의 요양원을 알아보라고도 권한다.

 

저자는 조금은 객관적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엄마를 바라보려 한다. 아버지와 함께 실버타운에 들어간 엄마를 보며 그동안 만났던 쪽방촌 독거노인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4년여의 시간을 기록하며 저자는 부모와 불화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털어놓고 화해한다. 그리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 간병일기라 하기엔 저자의 메시지가 묵직하다. 우리 사회가 과연 빈부와 상관없이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에게 바라는 것은, 그녀가 어렵지 않게 죽음에 닿는 것이다. 이미 많이 어려워졌지만 어렵지 않기를, 스스로를 비참하게 느끼며 존재하지는 않기를 바란다.(312쪽)

조금씩, 천천히 안녕, 나카노 료타, 2020 개봉

영화 속 엄마가 아버지의 치매 증상을 느낀 건 아버지의 70세 생일 무렵이었다. 그로부터 7년간, 가족들은 최선을 다한다. 아버지가 잘 못 알아듣더라도 평소처럼 고민을 털어놓는다. 작은 딸은 번번이 사람을 만나는 데 실패한 데서 오는 패배감을 얘기하고, 큰 딸은 아들의 사춘기를 옆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힘듦을 토로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치매는 되돌릴 수 없다. 대뇌피질의 문제 때문에 음식물을 제대로 삼키지 못할 것이고, 급기야 폐로 잘못 들어가면 폐렴으로 이어질 것이란 의사의 설명대로 아버지는 천천히 식구들과 작별한다.


마지막 장면. 방황하던 타카시(큰 딸의 아들)가 학교 교장과 면담한다. 무엇이든 네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자, 타카시는 치매로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꺼낸다. 교장은 자신의 어머니도 치매를 앓았다며, 이렇게 위로한다.  


“치매(dementia)는 긴 이별(long goodbye)라고 부른단다. 조금씩 기억을 잃고 천천히 멀어져 가니까.”


☞ 영화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세 모녀의 헌신적인 모습을 비춘다. 그래서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나브로 다가온 치매가 과연 얼마나 긴 이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의 메시지처럼 조금씩, 천천히, 후회스럽지 않게 이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파더, 플로리앙 젤러, 2021 개봉  

1937년생 안소니는 딸 앤이 파리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럼 난 어떡하니….” 안소니는 불안해한다.

그런데 또 다른 얼굴의 딸이 나타난다. 분명히 사위도 있었는데, 그녀는 5년 전에 이혼한 걸 모르느냐고 되묻는다.


안소니는 누군가 자신의 시계를 훔쳐 갔다며 흥분하고,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으니 다들 꺼지라고 한다.

그런데 사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따진다. 대체 언제까지 사람들 마음 상하게 하면서 여기 있을 거냐고…. 급기야 뺨까지 때린다.

무방비 상태인 안소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울음을 터트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눈물을 흘리며 자주 오겠다고 말했던 딸이 이제 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살던 집이 아닌 것 같다. 엄마가 온 것 같기도 한데 모르겠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


“정확히, 난 누구지?”
“내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아….”


안소니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한다. 그러더니 엄마가 보고 싶다며 흐느낀다.  


☞ 너무도 충격적인 영화. 엄마의 기억도 저렇게 얽혀 있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노배우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를 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공간도, 시간도, 사람도 뒤죽박죽인 현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안소니와 함께 불안한 심리 상태에 내몰린다. 치매 환자의 시점을 따라간 연출이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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