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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ug 26. 2022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치매 환자와 암 환자의 동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아버지의 경우가 그랬다.

우리집에 처음 오실 때만 해도 잘 드시는 것 같아 맘이 놓였는데, 갈수록 식사 시간이 늘어났다. 가래를 뱉으러 화장실에 가느라, 기침 하시느라 국이 식어버리기 일쑤였다. 밥맛이 없으시다며 짜디짠 젓갈만 찾으셨다. 여기에서라도 병원에 모시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예약 날짜를 잡았다. 기침 가래가 심한 게 혹시 폐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됐다. 위내시경도 함께 받기로 했다.


“보호자님, 여기로 와 보세요.”

아버지가 위내시경 받으러 들어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의사가 부른다.


“여기 보이시죠? 이게 다 암 덩어리예요. 저희 병원엔 더 얇은 내시경이 없어서 ‘위’까지 들어가지도 못했어요.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올 텐데, 제 소견으로는 식도암일 확률이 90% 이상입니다. 지금 당장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예약 잡으세요.”

“네? …….”   


모니터 영상엔 보기 싫게 생긴 암 덩어리가 여러 개 보였다. 기침이나 가래는 현상일 뿐, 암 때문이었다.

‘이래서 아버지가 음식물을 넘기지 못하셨구나.’

암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아버지는 대체 왜 이렇게 불편하실 때까지 참으셨을까?

나라에서 하라는 건강검진은 그동안 왜 안 하셨던 걸까?

아버지가 밥을 잘 못 드신 게 언젠데, 난 왜 이제야 병원에 모시고 간 걸까?

뒤늦은 후회와 원망이 밀려왔다.


부모님을 모시는 게 버겁다고 엄살이었는데, 이제 대학병원에 가기 위해 새벽길을 달려야 했다.

아침 9시 40분 검진인데도 대학병원 주차장은 만차였다. 이전 병원에서 받아온 영상 CD를 업로드하고 수속을 밟은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담당의를 만났다. 그런데 내시경 영상을 보더니 수술할 수 없는 상태라며 다른 의사를 추천한다. 의사를 만나 이야기한 건 2분 남짓. 다음 예약 날짜를 잡고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다음 주, 진짜 주치의를 만난 날. 의사는 정확한 건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며 빨리 예약하고 가란다. 그런데 위내시경 하러, CT 및 PET 촬영하러 따로따로 와야 한다. 대학병원에서 검사받다 병이 도지겠다 싶었다. 허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밀검사 결과는 암울했다. 위내시경 할 때,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해서 한가닥 희망을 걸었는데 아니었다. 식도암 4기. 수술뿐 아니라 방사선 치료도 할 수 없는 상태. 임파선으로 원격 전이되어 할 수 있는 건 항암제 치료(화학요법)뿐. 의사는 ‘잘 하면’ 암덩어리로 막힌 식도가 ‘뚫릴 수도’ 있다고, ‘한번 해보자’고 했다.  


가뜩이나 몸이 축나신 상태인데 과연 여든여덟이신 아버지가 견뎌내실 수 있을까.

누구도 선뜻 포기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지만, 긴 가족회의 끝에 항암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항암치료 받지 않아도 ‘한 3년’은 살지 않겠냐며, 아버지도 하지 말자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속마음을 어찌 알 수 있으랴. 내 생각에 아버지는 귀가 어두우셔서 의사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신 것 같았다. 그런데 애써 자세한 얘기를 묻지도 않으셨다. ‘까짓 거, 아프면 죽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셨지만 누구보다 건강하신 편이었다. 그저 노화려니 생각했는데 갑작스레 닥친 암 선고에 충격이 크신 듯했다. 아버지로서는 암도 암이만 이제 어디에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절망적인 것 같았다.




치매 환자와 암 환자의 동거,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있을까?

당신 몸도 불편한데 엄마까지 챙겨야 하는 아버지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당신 살아생전에는 엄마를 요양원에 안 보낸다고,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하셔서 괜찮으시려니 했다.

그러나 고통은 어떤 식으로든 비어져 나오기 마련이다. 반복 행동을 하는 엄마를 참을 수 없어 하는 만큼 아버지의 목소리도 커졌다. 난 또 엄마에게 화를 내는 아버지가 밉기만 했다. 결국 어느 날 아버지께 모진 말을 하고 말았다.


“아버지, 엄마가 어떤 병인지 몰라요? 엄마가 그런 걸 할 줄 알면 우리가 왜 걱정하겠어요. 그러니까 치매잖아요. 그렇게 구박하실 거면 지금이라도 따로 지내세요.”

  

그날 내가 목격한 장면은 이랬다. 엄마가 드실 약을 매일 챙기시는 아버지가 안방에서 약통을 가져오라고 엄마에게 시킨다. 엄마는 당연히(!) 다른 걸 가져온다. 그러자 아버지가 만날 먹는데 그것도 모르느냐고 느닷없이 화를 낸다. 엄마는 어쩔 줄 몰라한다.


아버지는, 엄마를 애들 훈육하듯 했다. 반복해서 얘기하거나 뭐라고 나무라면 엄마가 알아들을 줄 알고 자꾸만 호통을 쳤다.

몰랐는데 엄마도 힘드셨던 모양이다. 주무시다가 옆에 이상한 사람이 있다고, 거실에서 자겠다고 나오는 날이 많아졌다. 요양사 선생님이랑 있을 때 엄마가 눈물을 보였다는 얘기도 들었다.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아도 나쁜 감정은 남는다던데, 갈수록 주눅 들어하는 엄마를 지켜보자니 속상했다.


“엄마, 엄마도 아빠가 뭐라고 하면 대들어. 아빠는 왜 가만있는 사람한테 화를 내는 거야?” (엄마는 내가 누구냐고 물으면 ‘동생’이라고 답했지만, 내가 엄마라고 불러도 딱히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러면 엄마는 어른한테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아이고, 착하시기도 하지….’

엄마는 늘 그렇듯 평정심을 찾으셨고, 아버지를 '무서운 할아버지' 쯤으로 여기며 견디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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