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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ul 15.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를 목욕시켜 드린 날

요양사가 필요했다

“아니 요즘엔 요양원도 좋은 데 많은데, 그리로 모시지 그래요?”

“그렇게 먼 길을 왔다 갔다 하느니 아예 엄마를 집에 모셔 오는 건 어때요?”


일은 그만뒀지만 치매를 앓고 계신 엄마돌보느라 바쁘다는 말에, 친목 모임을 함께 하는 엄마들이 한 마디씩 했다.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얘기인데, 솔직히 다 듣기 싫었다.

‘당신 엄마라고 생각해 봐요. 그렇게 선뜻 요양원에 모실 수 있는지….’

맘속에서 삐딱한 말들이 비어져 나왔고, 전적으로 엄마를 모실 수 없다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불편했다.

어쨌든 당시로선 동생과 돌봄을 나눠 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치매는 강박증세와 같이 오는 것 같다.

초기엔 엄마가 씻고 또 씻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세수하고 로션 바르기를 반복했다. 스킨로션이 눈에 띄게 쑥쑥 줄어들었다.

가장 끈질기게 남아 있는 건 조명 스위치 끄기와 창문 닫기였다. 계절이 여름이어도 예외 없다. 당신이 절약하던 평소 습관이 드러난 것이지만 ‘강박’이기에 함께 사는 사람이 괴롭다.


동생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굴속에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모든 조명이 꺼져 있고, 창문은 물론 커튼까지 단단히 쳐진 집. 문제는 절대 엄마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잠시 동생이 안 보인다 싶으면 엄마는 여지없이 창문을 닫거나 불을 껐다. 그럴 때의 엄마는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


게다가 엄마는 저녁 6시만 넘으면 주무실 채비를 했다. <6시 내고향>을 즐겨 보시던 아버지도 한숨을 쉬며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엄마는 어린아이가 된 듯 절대 혼자 주무시려 하지 않았다.


퇴직 이후 내가 친정에 자주 간 건, 엄마를 돌보기 위한 이유지만 사실 동생 때문이기도 했다. 엄마가 걱정돼서 함께 살기로 했지만 치매까지 앓게 되실 줄 누가 알았을까. 동생이 '돌봄'의 짐까지 짊어지는 건 부당했다.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를 목욕시켜 드린 날, 내가 비정기적으로 엄마를 돌보는 건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를 전문적으로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각 지방정부별로 치매 환자를 위한 지원 정책이 있었다. 치매안심센터에 전화하니 치매약을 드시고 계시면 약값 지원이 가능하고, 1년간 조호 물품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약을 드신 지 1년 6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이에 대한 안내를 받지 않은 것 같았다. 관련 서류를 챙겨 갔더니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준다.


 ‘안전드림’ 앱에 지문과 사진을 등록하면 엄마가 집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었을 때 신속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노인장기요양 등급 신청도 그곳에서 했다. 다만 3개월에 한 번, 1년간 제공한다는 조호 물품은 좀 아쉬웠다. 엄마에게 당장 기저귀가 필요하지는 않은데, 그것밖에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그것도 예산이 떨어지면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커다란 기저귀 박스를 갖고 들어오니 호기심 많은 엄마가 뭐냐고 묻는다.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다.

“아, 엄마 꺼 아니야.”


요양등급 신청을 하면 관할 건강보험공단 담당자가 면담차 방문한다. 담당자의 질문에 엄마는 그것도 모르겠냐는 듯 대답했다(물론 정답은 아니다^^). 그런데 나도 가끔 헷갈리는 오늘 날짜까지 비슷하게 맞혀 깜짝 놀랐다(담당자가 간 뒤에야 알았다. 소파에서 보이는 거실 벽에 날짜까지 나오는 전자시계가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커닝을 하시다니, 머리가 좋은 분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ㅋ). 늘 힘겨운 모습으로 화장실을 향하던 양반이, 담당자가 한번 걸어보시라니까 허리까지 곧게 펴고 잘 걷는다. 도대체 그 ‘반짝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하지만 당신의 세계를 뛰어넘을 순 없었다. 당신은 결혼도 안 했고, 혼자 살고 있다고 답했다.


다행히 엄마는 요양등급 4등급을 받았다. 주간보호센터(치매전담형 장기요양기관)를 선택하면 더 오랜 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지만 엄마의 성격과 건강상태로는 무리였다. 코로나 때문에 입소 자체도 힘든 때였다. 하루 3시간 요양사가 찾아오는 ‘방문요양’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내준 서류에 이용 가능한 재가센터 리스트가 있었지만 어느 곳을 선택해야 할지 막막했다. 평가등급이 높은 곳이 좋은 곳인지도 판단할 수 없었다. 인터넷엔 장기요양등급 신청까지 해주겠다는 친절한(?) 재가센터가 넘쳐 났지만, 막막했다. 낯선 사람이 오는 건데, 엄마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걱정됐다.


아무튼 본격적인 돌봄이 시작됐다. 최선의 선택지를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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