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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ul 07. 2022

엄마에게 ‘착한 치매’가 찾아왔다

때늦은 후회와 숙제들

“퇴직하면 뭘 할 거야?”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까 여행 다니며 좀 쉬려고요.”

“좋겠다~!”


좋지 않았다. 아니,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퇴직할 때만 해도 이렇게 2년 이상 코로나 시대를 살게 될 줄 몰랐다.

게다가 엄마의 상태가 심각했다. 연로하신 분들이 흔히 겪는 건망증보다 조금 심한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치매’였다.

전화기 너머 엄마 목소리는 익숙한 억양 그대로였고, 늘 괜찮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엄마의 ‘페이크’였다.


그러나 치매는 당신이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으로 깊어져만 갔고, 그때가 마침 내가 일을 그만둔 시점이었다.

엄마와의 시간이 많아지면 “책 한 권으로는 택도 없다”는 당신의 삶을 기록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이미 당신만의 세계로 이동한 후였다.  

- 아직 미혼, 나이는 오십 대, 당신 남편은 할아버지, 우리들(자식들)은 동생 또는 그냥 식구….


그제서야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하고 요양사의 돌봄을 받았지만 하루 3시간으론 부족했다.

잠깐 혼자 계시는 동안 집 밖에 나갔다가 현관 비밀번호를 몰라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건 다반사였고, 급기야 집을 못 찾는 일이 벌어졌다. 허둥지둥 걷다 넘어지는 바람에 팔이 골절되기도 했다. 119가 오고, 경찰이 출동하고,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젊어서 전전두엽을 충분히 이용하고 좋은 경험을 많이 한 치매 환자는 순하고 ‘예쁜 치매’로 가게 되고, 나쁜 기억에만 집착하고 늘 불안해하던 치매 환자는 화를 잘 내는 ‘미운 치매’로 간다”는 글(기억 안아주기, 최현호)에 위안을 받은 적이 있다. 다행히 엄마는 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엄마가 좋은 경험을 많이 할 만큼 여유 있는 삶은 아니었지만,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엄마 성격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치매를 ‘예쁘거나 미운’ 혹은 ‘착하거나 나쁜’으로 분류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엄마는 ‘예쁘고 착한’ 치매이지만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예전의 엄마는 ‘치매’라는 말에 질색하고 ‘요양원’이라는 곳도 싫어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식으로서 괴로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십 개의 ‘~했더라면’이라는 문장들이 밀려오지만 때늦은 후회라는 것을 안다.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 지 다섯 달이 되어 간다. 엄마를 돌봐야 하는 부담에서 놓여났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봤다. 매일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실까. 그렇게 당신도 모르게 훅 덮쳐 왔던 치매라는 파고를 미리 대비하라고, 가볍게 뛰어넘으라고 하실 것만 같았다. 어쩌면 엄마가 내준 마지막 숙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치매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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