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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Nov 30. 2020

최대한 아프지 않도록, 최대한 편안하도록

노견 푸돌이의 혈뇨, 요도 악성 종양의 발견

주말을 앞두고 있는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아내와 즐겁게 저녁을 먹으려 식탁에 앉았는데,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 '철렁' 내 마음 한 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딱히 들은 이야기는 없는데... 혹시 나 때문인가? 나 뭐 잘못했나?'

혼자  생각을 하며, 슨 일인지 아내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꾹 참으며 우선 기다려보기로 했다. 좋지 않은 일을 굳이 억지로 꺼내어 다시 얘기하게끔 하고 싶지는 않았.


얼마 안 있어 입을 뗀 아내는 노견 푸돌이가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며칠 전부터 혈뇨를 계속 해 소변검사를 맡겼는데 결과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요도 쪽에 악성 종양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발견되었고 실험실에 조직검사를 맡긴 상황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최종 검사 결과는 악성종양이었다.


푸돌이의 혈뇨를 처음 발견한 것은 나였다. 올해 9월쯤이었던가 배변패드를 갈아주다가 눈에 띄는 분홍 빛깔이 노란 색깔 사이로 눈에 들어왔다. 음료수를 흘릴 리는 없고... 뭐지 싶어 한참을 들여다본 나는 뭔가 꺼림칙해 아내를 불러 같이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푸돌이가 쉬를 한 자국이었다. 푸돌이가 혈뇨를 하는 것이었다.


주치의 선생님(노견 방구를 돌봐주시는 분과 동일한 분이다)께 푸돌이의 이런 증상을 이야기하니 우선 지켜보자고 이야기해주셨다. 혈뇨가 반복적으로 지속되면 검사를 해보고 좀 더 정밀하게 알아볼 필요는 있지만, 현재까지는 생활환경이 갑자기 바뀌어서(처가댁에서 생활하다가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또는 아픈 방구와 같이 지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혈뇨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푸돌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방구와 따로 지내게끔 처가댁으로 다시 이송시킨 푸돌이는 그렇게 한동안 혈뇨를 멈추는 듯했으나 몇 달이 지나자 다시 혈뇨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맡긴 소변 검사의 결과가 다소 심각했던 것이었다.


나와의 저녁 자리에 아내는 푸돌이의 상태에 대해 비교적 담담한 말투로 얘기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쓰러웠다. 아무리 노견이라지만 처음 주치의 선생님에게 악성 종양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아내가 얼마나 당황스럽고 슬펐을지 상상이 된다. 푸돌이의 나이가 나이인만큼 어떤 질병이 와도 이상하지 않았고 아내 역시 마음의 준비를 나름대로 하고 있었겠지만, 실제 한 걸음 더 깊이 다가온 이별의 그림자를 마주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병원을 가기 전 푸돌이의 모습

그 얘기를 처음 들은 나는 당혹스럽고 황망해 지금 푸돌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자고 입원시키자고 차 갖고 오면 되냐고 허둥지둥되었다. 호들갑 떠는 나를 오히려 아내가 진정시켜주며 푸돌이가 검사를 받으며 있었던 일, 주치의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 본인의 생각을 침착하게 얘기해주며 말을 이어갔다.


조직 검사는 푸돌이의 방광과 요도에 호스를 넣어 소변을 직접 채취해야 하는 아주 힘겨운 검사인데 이를 마치고 난 푸돌이는 하루 종일 집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아프고 무서웠을 이 아이가 안쓰러웠던 아내는 푸돌이를 하루 종일 안고 쓰다듬어주고 위로해주었다. 푸돌이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아내의 입장에서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조직 검사를 받고 힘들어하는 푸돌이의 모습 ㅠㅠ

아내는 노견 방구와 푸돌이를 보며 이 아이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최대한 편안하게 지내다가 무지개다리를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 선택에 최선인 방법만을 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설혹 결과가 악성 종양일지라도 푸돌이가 너무 힘들어할 수술이나 강도가 강한 항암치료는 받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컸다.


그런 생각과 마음을 주치의 선생님과 나눴고 선생님도 보호자의 생각에 동의하시며 우선 무리가 되지 않는 가벼운 약물치료부터 시행하는 것이 어떻냐고 권해주셨다. 조직검사 결과가 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미 90% 이상의 확률로 악성 종양일 가능성이 높아 바로 약물치료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약물치료를 시작하면 푸돌이의 신장 수치가 빠른 속도로 상승해 기대 수명이 줄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현재 느끼고 있는 아픔의 정도는 줄어들게 된다. 다른 방법으로 약물 치료하지 않고 종양의 크기가 더 커진 후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전까지 소변을 보며 잔뇨감과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낄 푸돌이를 생각하니, 그런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푸돌이가 우리 곁에 좀 더 오래 지냈으면 하는 사람의 마음보다 이 아이의 남은 생을 편안하게 보내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더 중요했다.

요새 부쩍, 아내 품에 안겨 있는 시간이 늘어난 푸돌이

지금의 푸돌이는 다행히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 없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내는 이보다 더 큰 아픔이 찾아왔을 때 사람의 욕심으로, 본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연명치료를 하다 아이가 고통 속에 생을 마감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또한 그 판단을 전문가가 아닌 아내가 직접 하기에는 너무 버거워 주치의 선생님께 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주치의 선생님 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는 선택의 길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보호자분들이 많다고 한다. 의사인 본인도 이런 부분에서 늘 고민이라고 직하게 얘기해주셨다.


다만 혹시라도 푸돌이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아내가 후회하지 않도록 본인이 대신 판단해주겠다고 얘기했다. 물론 아직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아니니 지금의 치료에만 집중하자고 아내를 안심시켜주었다.


그렇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아내는 선생님에게 큰 위로를 얻었고 무엇보다 아픈 동물에 대한, 방구와 푸돌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의사라고 해서 모두 다 환자에 대해 따듯한 마음을 갖고 각별한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바쁜 치료 스케줄과 정신없어 돌아가는 병원 근무에 환자들을 기계적으로 대처하는 의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주치의 선생님은 찐이었다. 찐으로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아주 따듯한 의사였다. 그 마음이 아내에게, 우리 부부에게까지 전달되는 것 같아 너무 감사했다. 이런 주치의 선생님을 만난 것도 참 다행이었다.


"그래, 여보 말대로 아이들... 갈 때 가더라도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자...!! 우리가 그렇게 하자!!"

잠이 안 오는지 계속 뒤척이는 아내에게 넌지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내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어떻게 이렇게 방구가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푸돌이도 이런 어려움을 겪는지, 연달아 이런 상황을 겪는 아내를 보니 속상했다. 개호구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나도 이런데 아내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곤히 잠들어 있는 노견 방구와 푸돌이를 보며 잠잠히 생각에 잠겼다. 아픈 이 친구들을 위해, 그리고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무릎 꿇고 기도하려 한다. 이 아이들의 마지막이 편안했으면, 그리고 아내의 마음에 위로가 넘쳐났으면...


이루어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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