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소곤소곤! 강아지 깬다구요!!

개육아도 개빡세다 (feat. 분리불안 극복 프로젝트)

by 두부두애

18년 동안 한 번도 입원 경험이 없던 방구가 올해 뇌종양 신경증상으로 입원을 자주 하게 되면서 분리불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 사람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분리불안이 걱정될 정도는 아니었다. 예전에는 푸돌이와 단둘이서 집에 있어도 그렇게 심하게 불안해하지 않았는데, 아마 본인의 몸이 약해지고 몇 차례 병원에 입원하면서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아내가 곁에 있어도 잠에서 깨면 '두리번, 두리번' 아내가 어디 있는지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잠투정도 늘어서 아내가 토닥토닥해줘야 잠이 들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눕곤 한다.


더 큰 문제는 아내가 외출하게 되면 방구가 이를 인지하고 불안감을 느껴 다리에 무리가 갈 정도로 계속 걷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내가 출근하면 중간중간 다른 가족들이 방구와 푸돌이를 살피러 집을 방문하곤 하는데 역부족인 모양이다. 심지어 어느 날은 6시간 넘도록 계속 걸어 다녀 방구의 상태가 무척 안 좋아진 적도 있는데, 그 날은 유독 더 심하게 걸어 가족들이 방구를 안아주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내려놓으라 크게 짖으며 걷겠다고 고집부렸다.


그렇게 무리하게 걸은 방구는 다리가 '후들후들' 거려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었다. 부랴부랴 퇴근한 아내는 방구를 진정시키며 자세히 살펴보니 다리는 딱딱하게 굳었고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쿵쾅 거리며 혓바닥은 평소보다 더 많이 내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방구가 혹여라도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식은땀 흘리며 겨우 진정시킨 아내는 이대로는 방구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아이의 분리불안을 고쳐보기로 결심했다.

CCTV방구.jpg 거실을 계속 걷고 있는 방구의 모습 (반려견용 CCTV로 확인한 영상)

우리는 몇가지 행동을 주의하기로 약속했다. 첫째, 사랑한다는 이유로 방구를 계속 안아주지 않는다. 지나친 애정표현은 분리불안을 증폭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종종 애처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방구를 모른 체할 수 없어 아내나 나나 이 주의사항을 망각한 채 방구를 꼬옥 안아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때로 아예 시선을 피해버리는 등 방구의 투정을 최대한 외면해보려 노력하고 있다. 쉽지는 않지만...


둘째, 집에서 나가거나 들어올 때 유난 떨지 않는다. 집을 비우기 전 유독 더 미안해하며 한번 더 만져주고 안아준다든지 등의 유난스러운 행동이 아이들의 심리를 불안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꾹 참기로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귀가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마치 원래 집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가가 이들을 예뻐해 주기로 했다. 이 아이들에게 보호자가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이 엄청나게 큰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안아주지 말랬지!"

주의점을 다 들었지만 나는 무심코 퇴근 후 신발도 채 벗지 않고 나를 맞아주는 방구를 쓰다듬어주다가 아내에게 혼나고 말았다. 뒤늦게 개호구에 입문한 내가 오히려 더 안달이 났다. 그렇게 아내에게 꾸지람 듣는 날이 많아졌다. 사실 마음의 크기로만 보면 아내가 나보다 훨씬 더 이 친구들을 아끼는 마음이 클 텐데... 더 깊고 큰 사랑을 갖고 있는 아내는 방구의 건강한 삶을 위해 꾹 참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방구 분리불안 극복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 6시 50분, 아내는 연차인데도 불구하고 조용히 집을 나선다.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잠시 머무를 카페도 없는데 어디에 가있으려고 하는 건지 걱정이 된다. 차라리 처가댁에 가있으라고 이야기했지만 아내는 괜찮다며 언제든 달려올 수 있도록 근처에 있고 싶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이 추운 날씨에 괜찮을런지... 안타까운 눈빛으로 아내를 배웅했다. 아내는 어디를 향하고 있었던 걸까?


'삐빅', '부르릉' 살얼음 같은 바람을 뚫고 차에 타 시동을 건, 아내는 히터와 엉뜨(엉덩이 히터를 뜻한다)를 켜며 오래 앉아있을 수 있도록 편하게 자리를 조정했다. 그리곤 핸들을 잡지 않고 휴대폰을 들어 방구와 푸돌이를 비추고 있는 반려동물용 CCTV를 켰다. 아내는 어딘가를 가기 위해 차에 탄 것이 아니고 푸구(푸돌이와 방구), 특히 방구의 분리불안증을 극복시키기 위해 이 이른 아침에 눈을 뜬 것이었다.


아내가 가장 먼저 실행한 프로젝트는 '방구 몰래 출근하기'였다. 아내가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방구는 그 모습을 보며 불안감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방구에게 '방 안에 누나가 있으니 아침에는 좀 더 자도록 해'라는 메시지를 심어주려 했다. 물론 근본적으로 방구에게 보호자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는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 당장 내일 사무실에 출근해야 하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방구를 안심시킬 수 있는 우리만의 꾀를 낸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이 추운 겨울날 새벽을 깨워 몰래 차에 가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차로 간 뒤 1시간 뒤 나는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왔다. 다행히 방구는 안방에 아내가 있다고 생각한 건지 걷는 것을 멈추고 푹신푹신한 쿠션에 앉았다. 그리곤 노인네처럼 앉아서 꿈뻑꿈뻑 졸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고개를 떨구고 곤히 자고 있었다. CCTV로 이를 확인한 나는 아내에게 벅찬 감격으로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프로젝트가 대성공한 것이었다. 하하

잠든 멍뭉이들.jpg 멍뭉이들이 잠들었다!!! 야호!!

다행히 다음 날에도 이 방법이 방구에게 잘 먹혀, 아내는 매일 아침 두 멍뭉이의 밥과 약을 먹이고 아이들이 나른해질 때쯤 몰래 집을 나선다. 그리고 30분 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한다. 그럼 이 귀여운 것들은 '누나는 방에서 자고 있구나'라고 인지하고 자리로 돌아가 잠이 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아니 근데 내가 나가는 건 이 친구들한테 그렇게 큰 영향이 없는 건가?" 아내는 0.1초 만에 "응 맞아, 여보는 중요하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윽... 팩트폭행 당했다.... 물어보지 말걸...


아픈 노견 2마리와 생활하다 보니 우리 집은 때 아니게 육아를 간접 체험하고 있다. 외출을 하더라도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지 다른 가족들과 일일이 스케줄을 맞춰봐야 했다. 우리가 아기를 키우고 있는 건지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장모님은 그 정성으로 나 좀 챙기라고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구 노화로 백내장이 꽤 진행된 두 노견들은 밝은 불빛에 민감하게 반응했에 불을 켜면 바로 잠에서 깨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이든 밤이든 불을 켜고 방에 들어가지 않고 어두컴컴한 방에 몸을 먼저 내밀며 조심스레 문을 닫고 그제야 불을 켜곤 했다. 어둠을 걷는다고 해야 할까나... 불빛은 이 아이들에게 노출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겨우 잠든 이 녀석들이 깨는 순간 아내는 다시 거실로 강제 징집(?) 당할 테니까 말이다.

메인.jpg 불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조심 조심!

그렇게 조심 또 조심하는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내 발걸음 소리에 요놈들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육중한 덩치의 나의 발걸음이 땅바닥에 네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 친구들에게 꽤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거실을 지날 때, 특히 이 아이들이 자고 있는 곳을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될 때면 까치발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후웁'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숨을 잔뜩 죽이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종~종~종~ 걸어가곤 했다.


'(소곤소곤) 여보 답례품 여기다가 놔아~~'

오랜만에 결혼식이 있어 외출한 뒤 돌아온 우리 부부는 곤히 자고 있는 푸돌이와 방구를 보며 목소리마저 작게 말하고 있었다. 노견이라 귀가 잘 들리지도 않을 텐데... 어째서 우리 부부는 이렇게 조용하게 얘기하고 있는 걸까. 우리 부부의 모습이 웃겨 우리가 아기를 키우는 거냐고 서로를 보며 웃고 말았다.


배달 음식을 시킬 때도 요청사항에 "벨 말고 노크해주세요"라고 꼭 적는다. 아마 배달원분들은 아기를 키우는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거실 한 편의 구석진 곳에서 답례품을 뜯으며 박스 뜯는 소리가 나지 않게끔 조용히 정리를 했다. 혹여나 이 아이들이 깨면 절대 안 되니까!!


"나도 개인정비 시간 좀 줘어어 애들아~~~!!"

아내는 오늘도 방구와 푸돌이에게 시달리고(?) 있다. 특히 방구는 아내를 곁에 두려고 하는 건지 품에서 잠들고 말았다. 잠시 내려놓을 자세를 취하면 방구가 눈을 뜨고 낑낑되기 시작한다. 아내는 차마 잠든 방구를 보고 움직이지 못한다. 움직이면 분명 방구는 다시 깨서 빙빙 돌 것이다. 군대를 TV로 배운 아내는 '개인정비 시간을 달라며' 입모양으로 조용하게 외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아내에게 정말 육아 맘인 것 같다며 웃었다.

KakaoTalk_20201204_164044356.jpg 아내의 품에 착 앉아있는 두 멍뭉이들, 아내에게도 좀.. 개인정비 시간을 주지 않겠니..?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를 중심으로 생활환경을 맞추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바뀐다는 데, 우리 부부는 다른 의미에서 이를 겪고 있다. 물론 진짜 신생아를 돌보는 육아는 이보다 몇십 배는 더 힘들겠지만 개육아도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아내를 보며 참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육아를 사전에 경험하게 된 거라 생각하며 우리는 라임을 타며 이렇게 종종 얘기한다.

"개육아도 진짜 개빡세다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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