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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Dec 14. 2020

코로나가 아니어도 집순이가 될 운명

노견 두 마리를 두고 갈 수 있는 곳이 읍다...

"오 예쓰!!!! 불금이다!!!"

금요일 저녁 칼퇴해 너무 기쁘다는 지인의 카톡. 그는 오늘 내게 무얼 할 거냐고 물어본다.

"저는 집에서 강아지 봐야죠"

금요일 저녁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는 듯 답장했다. 진짜 그렇다. 노견 두 마리와 같이 생활하는 이 시국(?)에 불금은 없다. 물론 코로나라는 이 중대한 전염병으로 어디를 쉽게 외출할 수도 또 가서도 안되지만, 코로나라는 상황을 배제해도 우리에게 외출은 먼 이야기다. 노견 방구와 푸돌이, 이 웬수 같은 귀염둥이 두 마리가 우리가 퇴근하길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푸돌이. "누나~~ 누나~~ 언제와~~ 퇴근 언제 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종양으로 늘 염려스러운 19살 방구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간수치가 급상승했다. 량을 조금 줄였더니 이틀 전부터 낑낑되기 시작한다. 누가 보아도 눈은 졸리고 몸은 피곤한데 몸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지 잠 쉽게 들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끙얼끙얼' 옹알이를 하듯 계속 잠투정을 부린다. 안쓰러운지 내는 방구를 품에서 놓지 못한다.


장인어른께서 혼자 저녁을 드신다는 얘기에 우리 아버님과 같이 식사를 하러 처가댁에 갔다. 잠깐 외출한 1~2시간 동안 하얀 털뭉치 녀석은 불안한지 멈추지 않고 뱅글뱅글 돌며 우리를 계속 찾국 식사 후 같이 운동하려 했던 아버님과 책을 짧게 하고 집으로 돌아와 바로 방구를 안아주었다.

아내 품에 안긴 방구

아버님을 그렇게 보내는 게 못내 아쉬운 아내가 같이 집에 올라가서 방구와 푸돌이랑 놀아주라고 졸랐지만 아버님은 안부나 전해주라 쿨하게 대답하시며 이렇게 얘기하신다.

"족 중에 중환자가 있다고 생각하자"

삶의 깊은 무게가 느껴지는 아버님의 말씀이다. 아빠와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는 아내이지만 방구, 푸돌이를 위해 '와다다다' 서둘러 아파트 단지로 들어온다. "아빠!! 조심히 걸어!!!! 무릎 안 좋으니까 적당히 걷고!!!" 아버님에게 잔소리하며 손인사를 하는 아내의 모습에 못내 아쉬운 마음이 담겨있다.


평소 집돌이인 나와 달리 아내는 연말이 되면 늘 약속이 많았다. 모임이 어찌나 많던지 12월 금토일은 캘린더가 빼곡하게 꽉 차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코로나 영향으로 원래 있던 약속마저 취소되고 예전과 달리 열정적으로 약속을 잡지 않았다.


아내는 이렇게 약속이 없었던 적이 없다며 아쉬운 듯 말하지만 한편으로 한결 편안한 표정이다. 이 아이들 때문에 집을 비우면 늘 노심초사였기 때문이다. 내가 돌보면 되니 필요한 약속이면 가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었지만 아내는 손사래를 치며 거부한다. 본인이 이 노견 두 마리를 직접 돌보는 것이 마음이 편한 것이다.

서로 기대어 자는 모습이 귀엽다. 그래 이렇게 평소에도 서로 친하게 좀 지내보지 않으련?

황길동이라는 별명을 가진 외향적인 아내는 점점 내 성향을 닮아가는 건지, 이제는 외출하는 게 조금 귀찮아 보이기도 하다. 아내도 어깨를 으쓱하며 "솔직히 귀찮은 것도 사실이야"라고 답했다. 그렇게 활동적이던 아내가 집순이가 되어가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아내는 다음 주면 재택근무가 종료되고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다. 출근을 앞둔 주말이 되니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 보인다. 전화로 어머님께 신신당부하며 강아지들을 잘 부탁한다 약과 사료는 언제 몇 시간 단위로 어떤 것들을 줘야 하는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속되는 잔소리에 "알았어~~ 알았다고!"라며 성가시다는 듯  말을 거둬낸 장모님에게 아내는 "엄마!!! 고마워~~~!!♡"라며 평소에 하지 않던 따스한 말을 건넨다. 제 자식을 위한다면 못하는 게 없다던데, 아내는 이 두 털뭉치 노견들을 위해서라면 어머님한테 애교를 부릴 수 있다. 그렇게 무뚝뚝한 아내가 말이다.


집에 도착해 TV를 켠다. 아내는 원래 TV를 좋아하지 않지만 견 케어로 집에 묶여있게 되면서 TV를 즐겨 찾게 됐다.  본 예능 프로그램이 없었고 특히 '개는 훌륭하다'  강형욱 씨의 유튜브는 진작에 구독/알림 설정이 되어있었다. 넷플릭스, 티빙, 왓챠 등 온갖 OTT에도 가입되어있는 우리 집은 TV에서 놓친 방송을 다시 찾아보는 재미도 알게 되었다. 스마트 TV의 복잡한 리모컨 조작이 서툴었던 아내는 이제 능수능란하게 리모컨을 다룬다. 어쩔 때는 Born-To 집돌이인 나보다 더 리모컨을 잘 다뤄 내가 한 수 배울 때도 있다.


그렇게 집이가 된 아내는 아이 약이나 사료를 줄 시간이 되면 만사를 제쳐두고 먼저 강아지를 챙긴다.

"약 좀 먹자 쫌!!!아~~ 협조 좀 해주세요!!!"

오늘도 약을 먹기 싫어하는 방구와 푸돌이에게 억지로 입을 벌려 약을 먹이고 혹시 어디 안 좋은 데가 있지 않은지 구석구석 살펴보는 아내의 모습이다. 점점 몸이 약해지는 아이들이 안쓰러운 아내는 침대가 아니라 소파에서 자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소파에서 푸돌이, 방구가 잠을 잘 자는지 새벽에 깨서 아파하지 않는지 불침번을 서는데... 나랑 교대하자고 권해도 한사코 거절한다. 어쩌다 보니 전부 내 차지가 된 이 넓은 침대가 조금은 허전하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도 우리 부부는 이렇게 꼼짝없이 집에 묶여있다. 물론 조금은 갑갑하지만, 이 생활이 행복한 것도 사실이다.  때로 징하게 말을 안 들어  웬수라고 부르지만 아내에게 가장 소중한 이 귀여운 녀석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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