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부두애 Nov 04. 2020

나보다 강아지가 더 소중해?

노견 방구와 푸돌이가 질투가 나는 남편 "나야, 얘네야?"

"나야? 강아지야?"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도 아니고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지... 정말 유치뽕짝이다. 그런데 반려견을 이렇게 사랑하게 된 내가 이 말을 몇 번이나 아내에게 토로했었다.


처음 아내에게 나를 소개해준 지인은 나도 강아지를 2마리나 키운다며 같은 견주끼리 잘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아내의 환심을 사려 우리 집 강아지가 무슨 견종인지 어떻게 키웠는지 상세히 설명하며 노력했었다. 강아지를 통해 공통 관심사를 만들어가려고 애썼던 내 모습이, 아내의 눈에는 어땠을지 새삼 궁금하다.


결혼하고 보니 아내와 나는 반려견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엄청난 온도차가 있었다. 아내가 반려견을 사랑하는 정도는 내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이었다. 내 기준에서는 강아지와 사람의 공간은 엄격히 분리되어 강아지만의 공간에서 머물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노견 방구와 푸돌이를 강아지가 아니라 반려견으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고 이 아이들이 잠을 못 자면 본인도 잠을 설치고, 본인 영양제는 사지도 않으면서 그 비싼 강아지 영양제를 직구하는 모습이 나로서는 꽤 충격이었다.


물론 나와 내 부모님이 강아지를 키워왔던 방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아내가 보여준 그 사랑의 정도에, 그 마음의 깊이에 새삼 놀랐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게 큰 온도차를 겪으며 지내오던 어느 날 나는 결국 방구와 푸돌이에게 질투를 느껴 아내에게 크게 화를 내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부부 공동의 취미를 갖고자 새로 산 게임기 닌텐도 위(Wii)를 하며 놀고 있을 적이었다. 이 게임을 해본 분은 잘 알겠지만 춤을 추거나 격한 스포츠 게임을 하는 등 꽤 큰 동작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거실을 돌아다니던 방구와 푸돌이가 나의 모습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며 짖기 시작했다. 이 친구들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큰 덩어리 같은 녀석이 주먹질을 하고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등 크고 거친 동작들을 하는 모습이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처음 해보는 게임에 신이 나 강아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매불망 아내만 쳐다보는 방구, 1탄

아내는 내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게임기를 잘 샀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방구와 푸돌이가 계속 신경 쓰였는지 동작을 조금 자제해달라고 내게 손짓했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대답하곤 신나게 게임을 이어갔다. 방구와 푸돌이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아내 품에 안기기 시작했고 결국 아내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자기야!! 내가 말했지 조심 좀 해달라고!! 애들 놀라잖아!!! 이제 게임 그만해, 놀고 싶으면 영화나 드라마 봐"

아내의 고성에 깜짝 놀란 나는 황급히 게임기를 해체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는 데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게임을 못한다는 것 자체보다는 아내가 날카롭게 말하는 것이 서운했다. 나보다 강아지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이런 일은 방구와 푸돌이랑 같이 생활하면서 몇 번이나 느낀 감정이었다. 아내는 나와 푸구(푸돌이와 방구)가 같이 있을 때면 혹여나 내 발에 방구가 치이거나 나의 큰 동작에 아이들이 놀라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었다. 그러다 보니 다소 예민해진 아내는 평소에 비해 날카롭게 말을 쏘아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의 감정을 예민하게 잘 느끼는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고 나도 나름대로 조심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내게 예민하게 구는 건지, 방구와 푸돌이만 소중한지 괜스레 질투를 느꼈다. 물론 그 조심의 정도가 아내의 기준에서는 한참 부족했을 것이다. 평소에 조심성이 많지 않던 내가 한 번에 확 바뀌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아내도 많이 참고 인내했겠지만 아무래도 서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기어코 일이 터지고 말았다. 푸구를 안고 있었던 아내는 내게 평소와 같이 장난을 쳤는데 그 얘기를 듣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진 나는 정색하며 화를 냈다. 사실 아내의 장난이 짜증 났다기보다는 하루 동안 아내가 나에게 예민하게 굴었던 것이 불만으로 쌓이고 쌓여 폭발한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났지만 입을 열면 좋지 않은 감정들을 쏟아낼 것만 같아서 아내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고 내게 무엇이 그렇게 화났는지, 왜 그렇게 서운했는지 물어왔다.


"나보다 푸구(방구와 푸돌이)가 소중해?"

갑자기 그 순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는지 갑자기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가 사랑하는 이 조그마한 녀석들을 나도 좋아해 보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서운한 감정들이 모여 터져 나온 것 아닐까. 나도 조심성이 없는 동작들을 고쳐보고자 나름의 노력을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서러움이 밀려왔다.


아내는 내 이야기를 차근차근 듣더니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 왔다.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이 아이들도 사랑해서... 다만 예전 같지 않은 노견들의 모습에 혹여라 이 친구들이 다칠까 봐 본인도 지나치게 예민했다고 인정하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 말을 들으니 아내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나의 행동들이 얼마나 아내의 눈에 위태 위태해 보였을까. 쿵쿵 거리는 발걸음에, 부드럽지 않은 손동작들.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매우 연약한 노견 방구와 푸돌이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 누군가가 방구와 푸돌이에게 그렇게 행동하면 나 역시 무척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았을 것이다. 아내는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좋으나 이 친구들에게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어, 모두를 신경 쓰다 보니 평소보다 유독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이가 건강한 상태로 오래 지속되려면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필수다.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강요한다면 그건 사랑을 빙자한 폭력이 되곤 한다. 내가 살아온 환경과 상대방이 겪어온 배경을 고려해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랑에는 노력과 책임이 동반돼야 한다.


반려견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끔찍이 강아지를 사랑하는 이들도 있지만 강아지를 싫어하거나 크게 관심 없는 이들도 있다. '딸(아들) 또는 동생'이라고 부르는 사랑스러운 나의 반려견이 누군가의 눈에는 그냥 '강아지'이고 '애견'일 수도 있다.


유난스러움과 무관심 아니면 그 중간, 어느 정도가 가장 적절한 지점일까 어디가 정답일까. 물론 내가 생각하는 아니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방향'은 있겠지만 사실 '옳은 방향'은 없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뿐

오매불망 아내만 쳐다보는 방구, 2탄

반려견을 대하는 이 온도차로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을 거라 생각한다. 반려견으로 인해 오히려 사이가 더 멀어지고 어려워지는 그런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정작 이 작은 털뭉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말이다.


결국 문제의 해결점은 말썽거리로 전락한 반려견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반려견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 어느 쪽의 일방적인 주장만 강요하지 않는 것. 이 당연한 진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아니 서로가 노력하기 어려우면 나라도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랑의 뜨거운 온도는 늘 다른 이에게 옮겨 붙기 마련이니깐! 물론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쉽지 않으니까 더 노력해야 한다.


아내가 결혼을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노견 방구와 푸돌이었다. 이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가기 전에는 분가해서 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나와 결혼했고 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한다. 그 사랑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이해의 차원을 넘어 사랑의 차원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깨달았다. 이해하게 되면,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인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오래 참게 한다.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 정답은 간단하다. 사랑하라.

이전 11화 특별한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