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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Jul 03. 2023

월요일 점심시간에만 웃는 아이

다른 날에도 웃어줘.

"선생님, 오늘 랜플 틀어주시면 안 돼요? 멜론 말고요."

아이가 들뜬 모습으로 깡총깡총 뛰어오더니 해맑게 묻는다. 

'그래 물어볼 줄 알았다.'

"알겠어. 근데 선생님한테 너무 월요일 점심시간에만 웃는 얼굴 보여 주는 거 아니야?"




랜플이라 함은 랜덤 플레이 댄스의 준말이다. 그럼 랜덤 플레이 댄스는 무엇이냐.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다. 대게는 요즘 아이돌들의 유명한 안무를 출 수 있게 노래가 구성되어 있다. 5월 생일 파티 때 행사팀은 게임 대신 랜플을 하기 했다. 생일파티는 아이들이 준비하고 진행하도록 하는 터라 온전히 그들에게 맡긴다. 준비 상황을 확인하니 랜플을 한다기에 모두가 잘 참여할까 놀랐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많은 아이들이 아는 노래가 나오면 교실 앞으로 달려와 춤을 췄다. 춤을 추지 않더라도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춤을 좋아하는 지도 몰랐던 아이, 조용히 수업에 집중하던 아이도 물론이었다. 


"얘들아,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춤을 잘 추니?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람 정말 부러워."


신곡이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렇게 춤을 다 아는지 놀랄 일이다. 게다가 꿀렁꿀렁 웨이브도 잘하고 느낌이 제법 난다. 나 때는 춤 잘 추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춤 잘 추는 친구들은 정말 인기가 많았는데 요즘은 모두 다 춤을 잘 추니 이것으로는 인기를 측정할 수 없을 것 같다.  






5월 학급 회의에서 점심시간에 음악을 틀어달라는 건의사항이 올라왔다. 6학년 반 중 몇 개 반이 점심시간에 신청곡을 받아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 내게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안 될 이유가 있었다.



1. 가요나 팝송은 학교 밖에서 충분히 많이 듣고 있다. 학교에서라도 동요를 많이 들어야 한다. 

2. 교사의 컴퓨터에는 개인정보 및 학생 기록, 평가 문항 등이 저장되어 있어 학생들이 조작하다가 민감한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반 아이가 남의 반 뒷문에서 노래를 귀동냥하는 것을 몇 번 봐서 괜히 마음에 걸렸는지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조건으로 음악을 듣기로 하였다. 그리고 신청곡 시스템이 아닌, 유튜브에서 노래 모음을 내가 틀어주는 것으로 타협했다. 컴퓨터를 학생들이 조작하는 것이 내심 불안했던 터라 이렇게 조율했다. 아이들은 환호했다. 6월에 대체공휴일이 월요일에 많다는 것을 알고는 월요일에 못 들으면 다른 날에 꼭 들어야 한다고 치밀하게 요구했다.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우리 금쪽이들은 첫날부터 땀이 뻘뻘 나도록 즐겼다. 교실이 아니라 흡사 거대한 노래방과 같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월요일, 그 아이는 랜플을 외쳤으나 다른 아이들의 요구사항도 있던 터라 들어주지 못했다. 3번째 요청 끝에 랜플을 듣게 되었다. 



아이는 춤을 좋아한다. 일주일에 3번, 댄스 학원에 간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아이들에게 고민을 적어보라 준 쪽지에 꿈이 없다고 했다. 공부시간에도 공부는 곧잘 따라 하는데 매번 엎드려있거나 누워있는 편이다. 주의를 주면 한숨을 푹 쉬며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지만 어느새 다시 그 자세다. 쉬는 시간에는 일어나 수다도 떨고 하지만 친구들에게도 오늘 같은 찐 웃음은 잘 보여주지 않는다. 이미 난 사춘기요, 건드리지 마시오, 라는 아우라를 내뿜는 아이다. 


급식 시간, 내 뒤에 줄을 선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꿈이 없는 게 고민이야? 춤 잘 추는데 춤과 관련한 꿈을 가져보는 건 안돼?"

"춤은 그냥 취미예요."

"취미? 정말 잘 추던데? 선생님이 너처럼 춤 잘 추면 소원이 없겠다."

"선생님이 언제 보셨어요?"

"그때 교실에서 춤 많이 췄잖아."

"아, 그거요? 그런 춤 말고요."

"아. 더 멋진 춤을 출 수 있다는 거구나. 나중에 보여주면 안 돼?"

"부끄러워요."

"보여줘."

"생각해 볼게요."



이렇게 춤을 좋아하는 아이는 월요일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내게 말도 별로 안 거는 녀석이 이 날 만큼은 밝은 표정의 큰 목소리로 노래 선곡을 부탁한다. 즐거움을 숨길 수 없는 얼굴을 바라보자니 나도 웃음이 난다. 춤추러 학교 왔구나. 그래. 학교에 공부하러만 오겠어? 급식 먹으러 오는 아이도 있고, 친구 만나러 오는 아이도 있고, 심심해서 오는 아이도 있겠지.






"랜플이라고 검색하면 돼? 이거야?"

"아니요. 4번째요."


아이는 자신이 선택한 노래가 나오자마자 교실 속 빈 공간으로 춤을 추러 떠났다.

뒤돌아선 그 아이에게 속으로 말한다. 


'월요일 아니더라도 다른 날에도 이렇게 웃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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