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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y everything Jun 29. 2023

안 하면 안 돼요?

비밀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야.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엄청나게 후회하고 있을 줄은.




"찌-이-잉, 찌-이-잉,

 찌--------이-이-익-끼-익"


열몇 장을 남기고 복합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화면에 에러가 뜬다.


딸깍,

화면에 표시된 문을 열어본다. 분명 종이가 끼었다고 하는데 끼인 것은 없다. 벌써 3번째니 화가 스멀스멀 난다. 60장을 스캔하는데 50장쯤에서 에러가 나서 다시 처음부터 하는 게 3번째다. 4번째에는 되리란 보장도 없다. 아직 8팀이나 남았는데 이 속도면 1시간은 더 넘게 걸릴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니 열이 받는다. 화가 나서 약간 신경질적으로 열렸던 문을 닫는다.


탁.



스캔도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작업이 더 남아있다. PDF 파일을 제출자 이름으로 변환하여, 30여 명의 각종 개인정보를 팀별로 입력하고 파일을 저장하여 온라인 제출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우편 접수도 해야 한다.


'괜히 했나?'


이 생각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첫 뉴스일기를 검사할 때부터였다. 어떻게 쓰는지 지도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워했고, 그 결과물이 내 손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등을 거머쥐겠다던 아이들의 패기는 어디 갔는지 글씨를 읽지도 못하겠다. 뉴스 일기에 흥미를 보이는 아이들과 점점 귀찮아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생길 때마다 그만둘까,라는 유혹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공모전을 포기하는 순간 뉴스일기도 멈춰질 것 같아 참고 참고 또 참았다.



"선생님, 안 하면 안 돼요?"

"우리 지금까지 썼으니 한번 해보자. 해보는 것도 중요한 거야."



아이들에게는 성취감이나 도전을 들먹거리며 독려했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아침활동에 이렇게 힘을 쏟는 것이 힘이 들었다. 옆반 선생님도 놀라며 말한다.


"수업도 아니고 아침활동인데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시는 거예요?"



작년 수상작을 찾아보니 냉정하게 수상권에 들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자는 마음으로, 썼으니 출전이라도 하자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원성을 뒤로하고 3달을 끌고 왔다. 이제 고지가 눈앞이다. 개인전은 못했지만 2명 이상의 단체전으로 출전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는데도 하지 말까, 라는 생각이 팝업처럼 떠오른다. 욕심은 금물 (brunch.co.kr)


'쓰는 것도 힘들었는데, 제출하는 것도 장난 아니네. 하지 말까? 아니야, 이것만 참으면 돼.'


아이들보다 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꾹 꾹 누른 채 마침내 택배 상자에 일기를 담았다.



"얘들아, 여기에 우리가 쓴 일기가 담겼어. 오늘 선생님이 우체국에서 택배로 보낼 거야."

"아, 제발 1등 했으면."



아이들도 제법 실감이 나는 모양이다. 본인의 학습지를 봤을 텐데 허무맹랑한 꿈을 꾸는 아이도 있다. 혹시나 크게 실망할까 봐 에둘러 말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 하기 싫은 마음이 컸지만 끝까지 열심히 해서 도전을 했잖니? 수상을 못하더라도 너희는 많은 뉴스를 읽어봤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니 너희에게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 관심 있는 친구들은 내년에 개인적으로 도전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뉴스 일기를 쓸 거야."


'그리고 나야, 너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 꾹 참고 해낸 거 축하한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거야.'






뉴스를 통해 공부할 때 이야기가 넓어지고, 관심사가 커졌다. 교과 수업과 연계된 기사를 매주 열심히 찾아 나른 덕에 사회 시간에 배운 민주화 운동도 올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배웠다. 경제를 배우며 물가, 기업의 역할, 정부의 역할을 기사에서 찾아냈다. 기사에 실제로 쓰인 그래프를 가지고 수학 그래프 단원도 배우고 있다. 국어의 주장하는 글에서는 기사의 내용을 인용하여 근거로 삼았다. 공개수업 때 만난 한 학부모는 아이가 신문에 관심을 가졌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지금의 도전이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질 글쓰기 활동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비밀이 또 하나 있는데, 올해 문집을 만들 것이다. 아이들은 탄식을 하겠지만 두고 보시라. 졸업 앨범과 함께 한 권의 문집을 손에 들고 뿌듯해할 너희의 모습을. 앗! 그리고 또 수많은 후회를 할 내 모습도 보인다.


글쓰기 모임에서 공유받은 일력(김종원 작가 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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