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y everything Jun 29. 2023

배구공으로 피구를 해요?

피구왕 통키 몰라? 불꽃슛 몰라?


위 그림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국어(나) 7. 우리말을 가꾸어요'에 나온 그림입니다. 이상한 점을 찾아보시오.


혹시 이상한 점을 느끼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교과서를 오랜만에 보신 분은 피부색이 다른 다문화 학생이 함께 있다는 것을 답이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문화의 다양성을 체득하기 위하여 철저히 계획된 그림으로 정답이 아니다. 아마 눈치가 빠르신 분은 제목을 보고 유추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수업을 할 때의 나는 전혀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다. 우리 반 아이가 생각한 이상한 점은 바로 '공'이다.


단원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실태를 분석하고 바른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을 배우는 단원이라 그림은 도울 뿐이었다. 피구를 하는 상황에서 어떤 대화가 오갈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발표를 하려고 손을 들었다는 것이지? 기특하군. 바로 시켜줘야지.'

"K 발표해 보세요."

"선생님, 피구공이 이상해요. 피구공이 아니라 배구공이에요."

"어?"

갑자기 아이들도 분주해지더니 자기들끼리 진짜라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발언에 잠시 놀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그림을 살펴보니 왼쪽 구석에 공이 보였다. 배구공이다.

'와, 어떻게 이걸 봤대.'와 '수업에 집중 안 하고 이런 것만 봤네.'의 상반된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원래 배구공으로 피구 했어."

"에? 진짜요?"

"맞으면 아프잖아요."

"아프지. 요즘처럼 물렁한 공이 어딨어. 배구공밖에 없었지. 피구왕 통키 시절에는 노란 배구공에 빨간 불꽃슛 그려진 공 사고 싶어서 얼마나 난리였는데."



우리 때는 요즘처럼 다양한 체육 활동이나 물품이 많지 않아서 학교에서 공을 이용한 활동을 자주 했다. 그래서 피구도 많이 했다. 피구공은 당연히 배구공이다. 피구왕 통키가 유행이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삼각패스, 오각패스 등의 기술을 쓰다 마지막에 불꽃슛을 날리면 게임 끝이었다. 만약 집에 빨간색 불꽃 5개가 그려진 노란색 배구공이 있다면 인기 최고였다. 30여 년 전의 일이니 아이들은 피구왕 통키도, 불꽃슛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아이들이 배구공으로 피구하는 것을 놀랍다고 생각할 줄 몰랐던 것처럼.



요즘에는 아이들이 맞아도 안 아프게 물렁한 스펀지 공으로 피구를 한다. 물론 그 공에 맞아도 아프다고 한다. 우리 때는 피구 할 때 얼굴도 맞고, 안경도 한 번 날아가고, 손가락도 꺾이고 하는 일이 흔했다. 또 라테 타령이냐고 하신다면 미안하지만 실제 그러하지 않았는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니 반에서 제일 덩치도 크고 운동도 잘하는 H가 맞으면 너무 아픈 거 아니냐며 계속 묻는다.


"너희 너무 약한 거 아니야? 선생님은 강하게 컸어. 선생님은 강한 사람이야."


농담처럼 선생님은 강하니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점차 사춘기의 기세가 강력해지는 6학년 학생들에게 담임 선생님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허세도 부려본다.



"맞아, 우리 조금만 다쳐도 무조건 깁스하잖아."

동의하는 아이들도 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씩 이런 일들을 마주할 때 요즘 아이들의 '약함'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세세하게 따지고 든다면 이건 약한 것이 아니라 교육 용품의 발달이나 사회의 발전, 시대 변화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요즘 아이들의 약함도 부정할 수는 없다. 



저학년 교실에서나 자주 쓰일 줄 알았던 밴드는 올해 6학년 학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피 한 방울도 보이지 않는 상처에도 일단 붙여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바느질 수업을 한창 하던 실과 시간에도 밴드는 날개 돋친 듯 나갔다. 


"선생님, 밴드 붙이고 싶어요."

"어디 다쳤어?"

"여기요."


바늘에 콕 찔렸으나 다른 손으로 쥐어 짜야지만 보이는 피 한 방울에도 밴드를 붙이고 싶다 한다. 예전 같으면 아프긴 해도 피 안 나오면 툭툭 털고 바로 하던 일 했을 텐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국어 시간에도 직접 글을 쓰는 대신 긴 문장은 붙임딱지로 대체되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이 힘들까 봐 친절히 긴 문장을 스티커로 만들어 놓았다. 조금이라도 길면 이거 다 써야 하냐며 쓰기도 전에 묻는다. 수학 시간에도 일일이 동그라미를 그렸던 우리와 달리 형형색색의 스티커가 대신한다. 우리 때는 몇 십 개도 그렸는데 요즘의 아이들은 떼서 붙이기만 하면 되는데 이것도 힘들고 귀찮다고 아우성이다. 



조금이라도 상처받을 수 있는 행위도 원천 봉쇄다.

누군가는,

소나기처럼 그어서 채점하면 마음의 상처를 주는 행위고, 틀린 문제를 별표로 표시하면 아이의 마음을 덜 아프게 하고 자존감을 지켜준다 한다.

맞춤법 지도를 하기 위해 받아쓰기를 하면 우리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 안된다고 한다.

글씨 지도를 하면 선생님의 기준이 높아 우리 아이가 기죽는다고 한다.



아이들이 상처입을 수 있다고 점점 금지되는 것이 늘어난다. 아이들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해줘야 하는 것은 100% 맞다. 그러나 힘들게 노력해 보는 대신 별표가 쳐진 시험지로 상처를 가리고, 기죽지 않게 시험을 안 보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경험하지 않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티끌 같은 상처도 받지 않고 힘듦을 겪지 않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얼마나 큰 좌절을 겪고 상처를 받을지 걱정이 된다.



아이 수준에 감당 가능한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고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른의 할 일이 아닌가 싶다. 해봄직한 일을 해보는 시작의 경험, 도전의 경험, 그리고 해내는 경험을 아이들이 많이 경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실패해도 일어나는 경험까지도.


이전 17화 방학 한 달 전 주의보를 발령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