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리 Apr 19. 2022

남미에서 돈 벌어요(3) 과거와 이별

핸드폰을 잃고 나는 쓴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도난당했다. 손 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오토바이를 탄 범인이 내 손에서 핸드폰을 가져갔다. 내가 남미에 있었구나 처음으로 자각한 순간이었다.  


핸드폰을 분실한 건 처음이다. 아무리 술에 떡이 되어 놀이터에서 잠든 순간에도 핸드폰을 분실한 적은 없었다. 그 기계 안에 나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다. 기계 하나 잃어버렸을 뿐인데 정신이 아찔하고 내 전부가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 우선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와 각종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별 짓을 다하니 해외에서 서럽기도 하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참 웃긴게 스마트폰을 10년 쓰고 손에서 놓쳐버렸는데 기억 남는 번호가 내 머릿 속에 하나도 없다. 스마트한 기계를 쓰면서 정작 나는 스마트하지 못했다.  


물론 생각을 곱씹을수록 화도 나지만 다시 보면 무서운 순간이었다. 순식간의 절도였고 몸에 손 하나 안 댄 사실이 점점 감사함을 느껴야 했다. 약간의 트라우마도 남겼다. 사람들이 다가오는 순간에 겁을 먹고 매우 경계심이 생겼다. 카톡 번호가 연동되어 있어 브런치 계정도 겨우 로그인했다. 분실 2주가 지나서야 점점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그냥 웃어야지 내 잘못이지 내가 방심했지 하면서도 속이 쓰린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별에서 시간이 약이라는 게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통하는 말은 아닌것 같다. 시간이 점차 지나니 지난 물건에 미련을 버리고 해는 다시 뜨고 나는 또 하루하루를 살고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임시로 현지에서 슬 저렴한 보급폰을 샀고 유심을 바꾸면 바로 전화번호가 생기고 다시 하루가 굴러간다. 

마치 내가 잃어버린 핸드폰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 처럼.


얻은 교훈도 있다. 단 하나의 물건에 나의 전부를 담고 다시 보지도 않을 사진을 매일 찍어대고...어찌보면 순간을 살지 못하고 핸드폰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고 메세지를 통해 사람과 연결하고 그렇게 또 다른 순간을 놓치며 산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이렇게 되돌아보면서도 가을에 나올 아이폰14를 기다리겠지만 당장 길에서 핸드폰을 보는 습관이 사라지니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더 많이 관찰하게 되고 지구 반대편에서 처음 만나는 4월의 가을을 느끼고 낙엽을 보고 가을 냄새를 마셨다. 


내가 잃어버린건, 정확히 내가 보내버린건 기계가 아닌 내 과거였다. 과거를 떠나보내도 내 현재는 시작되었고 내 미래는 다가온다. 왜 몸소 느껴야 겪어봐야 깨달을까. 


핸드폰을 잃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오늘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작가의 이전글 남미에서 돈 벌어요(2) 먹고 사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