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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리 Jun 12. 2024

나무,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정서도 통역이 되나요 

연차를 내고 통역을 갔다. 


몇 주 동안 이어진 현장통역이었다. 외국에서 온 관계자와 합숙훈련하며 한국의 기술을 전수하는 통역이었다. 

선수들과 함께 출퇴근을 하고 밥을 먹다 보니 정이 생기고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다. 


사실 전문 기술이나 현장 지식은 공부하고 익혀서 전달하면 된다. 언제나 어려운 부분은 정서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대부분 중남미다. 중남미와 한국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한다는 공통점은 있으나 경쟁과 헝그리정신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자원이 풍부한 대륙과 천연자원이 빈약한 국가의 성장 결과랄까. 인재를 중시하는 한국은 경쟁이 과도하게 심하나 그런 정신으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이루었다. 천연자원과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중남미는 풍요로운 자원으로 현재를 즐기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그만큼 성장은 더딜 수밖에 없다. 대학원 졸업 후 직업통역사로 지낸 지 이제 5년 차. 항상 고민되는 부분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정서를 통역할 수 있을까? 


극과 극의 성향,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서는 사실 통한다. 출퇴근 길 함께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오래전 추억을 떠올리는 노래가 나오길래 자연스레 흥얼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했더니 외국친구는 자연스레, 이 노래를 들으며 누굴 떠올렸는지 물었다. 쉬는 시간에는 자연스레 가족사진을 내게 보여준다. 나 또한 자연스레 가족들이 떠오른다. 나의 아빠도 이렇게 일을 했겠구나 하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다. 나무를 만지는 기술자들의 손을 보며 아빠의 손을 떠올렸다. 내가 평생 보고 자란 손이었다. 


이번 기술 통역은 건축과 목공기술 분야였다. 땅에서 자라는 나무를 잘라 재단하고 구조를 만들고 조립하고 가공하면 일생에 필요한 모든 가구 및 건축물을 만들 수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야말로 구조와 실용성을 겸비한 종합예술이다. 아빠가 평생 일했던 분야를 통역하다 보니 새삼 뭉클하다. 나무냄새를 맡을때 마다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빠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나무를 배우는 시간 같았다. 나는 비로소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무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작업시간 내내 나무를 만지고 점심시간에 나뭇잎 사이로 산책을 한다. 나무 특성을 그대로 살려 예술로 완성된다. 나는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5년간 일을 하며 이토록 맘이 쓰인 통역이 있었을까. 자꾸자꾸 맘이 쓰인다. 정서가 통했나 보다. Pura vida, All i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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