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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큐레이터 에드가 Dec 22. 2022

인문학을 만나게 된 우연을 가장한 필연

돌이켜보면, 내 삶의 가장 큰 변곡점은 바로 인문학을 만났을 때이다. 내가 처음 인문학을 접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독서 모임 공지를 보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시로부터 7년 전 먼 타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작가 한 명을 알게 되었다. 그와 처음 만난 건 화면을 통해서였다. 화상 교육으로 그를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지금처럼 화상 교육이 흔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서 7년 동안 잊혀졌던 그의 이름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그가 출간한 책은 미래학에 관한 책이었다. AI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같은 지금은 상당히 익숙한 주제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얼마 안 된 시점이었으니까. 내게 미래라는 주제는 큰 흥미가 되지는 않았다. 단지 나의 흥미를 자극했던건 건 화면 너머로 알게 된 그의 이름이 박힌 책이었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는지 의문도 들었지만, 머지않아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다는 걸 확인했다.


나는 독서 모임에 참가 신청을 했다. 심지어 방학을 반납하고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OT를 참여했다. 처음 방문했던 그 장소는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사방 면이 책으로 가득 메워진 공간. 엄숙함이 온 사방에 묻어 있었다. 나는 엄숙함이 내 코를 자극하는 듯 했다. 금방이라도 제채기가 나올것만 같았다.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라는 생각을했다. 눈치가 빠른 나는 눈을 사방면으로 굴리기 시작했다. 나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쉽사리 농담할 수 없겠군.


OT 는 원활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나의 몸은 원활한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눈에는 학구열이 불타올라 보였다. 나는 그 공간이 쉽사리 아무 때나 들락날락할 수 없는 공간이란걸 이날 알게 되었다. 학구열이 불타던 사람도 버티기 힘든 공간이었다. 


미리 알았다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나는 지금도 인문학에 인자도 모르고 살았겠지. 나는 그 모임이 함께 모여 책을 읽는 수업인 줄 만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읽는 건 기본이요. 집에서 책을 읽고, 발표를 준비해야 했으며, 토론까지 진행하는 수업이었다. 더 충격적인 건 두 달 동안 과학, 철학, 경제학, 미래학, 경영 등에 방대한 내용이 담긴 8권의 책을 독파해야만 했다. 책 두께만 어림잡아, 뻥 좀 보태면 내 키의 절반가량이 되었다. 후에 이야기하겠지만 이 책을 짊어지고 다니는 건 상당히 고통이었으며, 누구는 케리어를 끌고 다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업 형태. 책이라고는 읽어본 적 없던 내가...... 책을 읽고 발표와 토론을 해야 한다니 눈 앞이 깜깜해졌다. 읽기도 벅찬 내게는 가히 엄청난 시련이었다. 방대하고 넓은 내용에 책을 2달 만에 소화해야 한다니…. 하지만 나는 무를 수 없었다. 이미 부모님에게 방학에 한국을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던 터라, 나는 이번 결정을 무를 수가 없었다. 그래 칼을 뽑았으면 무르지 말고 무라도 썰어봐야지…. 이때는 미처 몰랐었다. 무라도 썰어보자고 뽑았던 칼이 나의 인생 전반을 썰어 버릴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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