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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큐레이터 에드가 Dec 27. 2022

서른, 인문학 책 100권 읽어보며

책을 많이 읽는다고 좋을까?

서른, 인문학 책 100권 읽어봤더니 (지속적으로 경험담을 끄집어낼 계획)


인문학 책 100권을 읽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림잡아 5년의 시간. 학교를 다닐 때는 잠을 줄여가며 읽었고, 방학에는 밤을 세가며 읽었다. 그렇게 5년 남짓한 시간을 몰두해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100권 읽었다.


인터넷에는 애독가들이 많다. 어떤 애독가는 자신이 책을 몇 권 읽었는지 인증하기를 좋아한다. 한 달에 30권 6개월에 몇 천 권 또 어떤 사람은 불과 2년 만에 몇 만권에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 내가 만화책을 속독으로 읽어도 그만큼 읽지 못할 듯하다.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는 기인이 많군. 몇 만 권에 독서를 자랑하는 사람은  나의 독서 이력을 초라하게 만든다. 몇 만권을 읽은 사람이 나를 보면 뭐라고 생각할가? 5년이라는 시간동안 고작 100권 읽으셨어요? 독서 제대로 안 하셨네 핀잔을 줄지 모른다.   


무조건 많은 책을 읽는게 좋을까? 나 역시 다독을 선호한다. 인증 역시 좋아하는 편이다. 책을 편식하지 않는 다. 어떤 장르를 불문하고 다 읽는다. 철학, 정치, 경제, 예술, 시, 판타지 소설,  심지어 만화책까지도. 나는 몇 만권을 읽었다는 사람에게 불편한 느낌이든다. 그들로인해 나의 독서이력이 초라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책에도 난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들기에도 버거운 철학책을 읽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사람이 읽으라고 만든 책이 맞을까?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종이 위에 그려진 검은 물체들이, 더 이상 언어로 보이지 않는다. 수 십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해석되지 않는다. 그렇게 끙끙 거리며 책 한 권을 읽었을 때 기분은 말로 표현 못 한다. 


몇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과 머리를 싸매어 가며 몇날 몇일 밤을 새워가며 읽은 책이 같은 숫자로 카운팅 된다는 게 불공평해 보였다.


얼마 전 독서를 하는 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기사는 사실이다. 주변에 책을 읽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특히나 책 읽기 취향이 비슷한 사람은 더 귀하다. 그러다보니 우연치 않게 책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무척이나 반갑다. 오! 그 책 읽으셨다구요? 저도 봤어요 어땠어요? 라고 말하며 금새 친해질  수 있다. 서로는 알고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는건 쉽지 않다는 것을. 이런 환경때문에 몇천, 몇 만권을 읽었다는 사람들이 나오는 듯하다. 이 또한 하나의 스펙이 될 수 있으니까.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현 시점에서 뭘 얼마나 읽는게 대수일까? 그냥 읽는 사람이면 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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