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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화 Dec 31. 2020

게으르고 비겁해서 사랑스러운 수다쟁이의 드라마

<멜로가 체질>


  이 드라마는 게으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게으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멜로가 체질>은 드라마 스스로가 게으르다. 포스터 아래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라는 문구를 보라. 카메라로 이야기하고 편집으로 설명해야 할 영상매체가, 대놓고 "대사"로 승부하겠다고 선언하다니 이 태도는 게으름을 넘어 비겁해 보이기까지 하다. 


  대체 이런 드라마를 찍은 감독은 누굴까. 어라. <극한직업>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병헌 감독이다. <극한직업>을 돌이켜보면,  오히려 아주 성실한 카메라를 장착한 코미디 영화에 가까웠다. 요즘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서, 코미디 영화들은 한결같이 카메라와 편집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작가가 써낸 농담들을 카메라 앞에서 툭툭 던져대기만 할 뿐, 카메라와 편집은 코미디 효과를 만들어내는 데에 그 어떤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다. 이런 세태에서 <극한직업>은 돋보였다. 화면에서 상황의 얼마만큼을 관객에게 보여줄 것인가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이미지로 웃음을 만들어낼 줄 아는 웰메이드 코미디 영화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극한직업>이 대사가 재미없는 영화는 절대 아니었다.


  이제 이 드라마의 정체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병헌 감독은 분명 대사에도 재능이 있는 감독이었다. 쉬지 않고 대사를 쏟아내는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싶었지만, 그걸 실현하기에 영화라는 매체는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나 보다.  이 드라마를 이병헌 감독이 " 하고 싶은 것 다 하려고"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어쩌면 예술이라는 엄격한 잣대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드라마라는 장르에, 성실한 카메라를 기대하는 나 자신이 지나치게 진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고 나니 이제 호기심이 관심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어디하고 싶은 것 얼마든지 해봐라. 그렇게 난 넷플릭스를 켜고 <멜로가 체질>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 얼마든지 해봐라!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의문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드라마를 켜고 나면, 드라마 한 편 한 편 속에 대사들이 거의 "쏟아지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보다 대사가 몇 배는 많다. 이렇게 많은 대사들을 들이부어버릴 것이라면 대체 왜 <멜로가 체질>은 소설도 연극도 아닌, 드라마여야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은 드라마가 진행됨에 따라 자연스레 전부 사라졌다. 난 이병헌 감독이 천만 영화를 감독한 베테랑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매 회차 결말마다 그 회차의 명대사들을 에필로그에 다시 한번 실을 만큼 드라마 스스로가 자신의 대사를 자랑하지만, 어째 더욱 눈이 가는 건 이병헌 감독의 카메라와 편집이다. 그는 영상언어를 절대로 버리지 않았다. 영화감독으로서의 감각이 배우가 가만히 서서 지루하게 대사만 늘어놓을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쏟아지다시피 하는 대사들은 배우의 몸짓과 카메라의 율동을 거치면서 비로소 우리에게 닿는다. 이 드라마는 스스로 게으른 척하고 있고, 뻔뻔하게 그걸 내세우기까지 하지만, 결국 드라마를 완성하는 건 성실해지고 싶어 하는 카메라의 관성이다.


  <멜로가 체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작품의 1화를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드라마의 첫 회차. 인물들을 소개하고, 이들이 처한 상황을 소개하고 나면 끝날만한 시간이다. <멜로가 체질>의 1화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다. 이 회차는 마치 세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세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난 1화가 채 끝나기 전에 세 명의 인물들 모두와 정이 들어 버렸다. 도대체 다음 회차를 어찌 이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알찬 서사와 연출로 꽉 찬 1화와는 별개로, 본작의 전체 회차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면,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들과 크게 구분되는 점은 각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서사와 멀리 놓여있는가에 있다. 대사가 많은 영상을 본다는 것은 곧 서사에서 그만큼 멀어진다는 의미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아침마다 방영되는 일일연속극을 예시로 들어보자. 아침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힘은 서사다. 누가 누구의 아들이었고, 누가 죽었고, 누가 불륜을 저질렀으며 누가 알고 누가 모르는지, 이 끊임없이 요동치는 서사의 흐름들이 드라마의 다음 순간을 기다리게 한다.


  아침드라마는 빠르게 다음 순간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대사의 양은 적지만 되레 대사의 비중은 크다. 한 마디 한마디가 중요하고 또 그 한마디 한마디는 대부분  방송국 지하 세트장 안에서,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 안에서 표현된다. 다시 말해서 아침드라마에게 중요한 것은 순간보다 전체이다.


  <멜로가 체질>은 이런 류의 드라마들과 정확히 대척점에 위치한다. 대사가 많다는 것은 곧 수다가 많다는 의미이다. 수다는 중요한 사실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건 꽤나 시답잖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웃음을 위한 아무 의미 없는 너스레이기도 하다. <멜로가 체질>에는 그런 순간들이 많다. 이 순간들은 서사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에 오히려 이 순간들은 빛이 난다. 순간들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우리는 쏟아지는 수다를 들으면서 다음 장면을 추측하거나 숨은 의미를 찾아내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캐릭터들과 함께 그 순간을 즐기면 그만이다. 대사들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할 때 비로소 매력으로 다가온다.


  여기까지 칭찬만 늘어놓았지만, 본작의 "대사"와 "캐릭터"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토할 수밖에 없다. 본작의 캐릭터들은 어쩌면 고유의 생명체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들의 대사는 지나치게 많은 "티키타카"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나칠 만큼 완벽하게 오고 가는 여러 캐릭터들의 대사는 같은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툭툭 던지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그렇기에 이 캐릭터들은 종종 이병헌 감독의 인형극 속 마리오네트들처럼 보인다. 게다가 종종 그 대사들의 구체적인 오글거림은 듣는 이의 거부감을 자극할지도 모른다. 성향에 따라 이 거부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시청자가 있다면, 절대로 이 드라마의 매력에 빠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멜로가 체질>의 시청률은 1.8%에 불과했다.


  1.8%의 취향과 나 자신의 취향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위험. 그 위험을 감수하고도 이 드라마를 봐야 할까?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꼭 감상하기를 권하고 싶다. 특히나 당신이 20~30대의 OTT 서비스 이용자라면 더욱 그렇다. 본작은 사회초년생 주인공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아주 일상적이고, 너저분한 수다들과 함께 말이다.


  우리에게는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나, 가슴이 찢어질듯한 슬픔 혹은 10분마다 인물들이 삶이 롤러코스터처럼 뒤바뀌는 충격적인 서사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사회초년생들끼리의 너저분한 수다가 다욱 어울리는 시간들이 있다. 그건 꽤 중요하기까지 하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멜로가 체질>을 봐야 할 이유다. 또 이것이 1.8퍼센트의 시청률에 머물렀던 이 드라마의 핫클립이 유튜브를 휩쓸고, OTT 인기 차트 상단에서 꾸준히 머물러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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