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 흔한 SNS나 블로그도 없었다. 책 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글을 올려본다는 브런치에도 글 한번 올려본 적이 없었다. 나는 유명인도 아니고 특정분야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쌩초보'였다. 업무상 회사에서 글을 자주 쓴다지만 내가 쓰려는 에세이와는 거리가 먼 딱딱한 정보 위주의 글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내 책을 내고 싶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쓰는 이 글이 책이 될지 아닐지도 모르는 채.
*이 글은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받는 아이였다>(클랩북스, 2024)를 쓰고 출간하기까지의 전 과정(2023.4~2024.4)에 대한 글입니다. 책을 내고 싶은 분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어 쓰는 글인 만큼 최대한 담백하고 간결하게 씁니다.
설 연휴를 나흘 앞두고 글을 다 썼다. 내리막길을 달릴 때 다리가 점점 빨라지는 것처럼, 끝을 향해 갈수록 글 쓰는 속도가 빨라졌다. 에필로그는무려 2시간 만에 썼다. 그래도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에필로그에 담겼다.
탈고 후 집으로 돌아가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아이처럼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걸었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과 아이가 달려와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내가 한달만에 전체 원고의 3분의 2를 써낸 건 옆에서 응원해준두 사람 덕분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글을 쓰는 내내 행복했다. 몸은 무거워도 마음만은 가벼웠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활력이 넘쳤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좋아졌다. 나를 돌아보며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마지막 며칠은 퇴고를 하는 데 썼다. 이미 수십 번 읽어서 문장까지 외워버린 글이었지만 몇 번이고 마음에 안 드는 표현을 고쳤다. 지난 몇 달간 미묘하게 달라졌을 원고의 톤도 앞뒤로 비슷하게 맞췄다.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보며 툭툭 걸리는 조사나 단어를 고치기도 했다. 그렇게 계획대로 설 전에 전체 원고를 출판사에 전달할 수 있었다.
설연휴가 지나고 드디어 에디터님의 메일이 왔다. 잔뜩 긴장해서 메일을 열어보았는데 큰 수정 사항 없이 초안 그대로 편집에 들어가겠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미팅 때 이야기한 대로 잘 써주셨다", "몰입도가 높고 감동, 웃음, 배움이 있는 좋은 원고다”라는 에디터님의 말이 기뻐서 하루에도 몇번씩 메일을 꺼내 읽었다.
그리고 3월이 왔다. 에디터님이 한 번, 내가 한 번 주거니받거니 퇴고를 하며 오탈자를 고치고 표현을 다듬었다. 그렇게 서너 차례의 퇴고를 거친 다음에야 내지 디자인 시안을 받았다. 디자인에서 내가 할 역할은 크게 없었고 참고 의견을 드리는 정도였다.
다음으로 책 제목 후보들을 받았다. 솔직히 처음에 제안받은 세 개의 제목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뭔가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후 에디터님이 전혀 새로운 제목을 보여주셨다. 출판사 직원분들이 똑같이 감동한 문장에서 뽑았다고 하셨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받는 아이였다>
이 제목을 읽자마자 눈물이 났다. 이전에 들었던 제목과는 달리 딱 들어도 내 책 제목 같았다. 곧바로 답장을 했다. "에디터님, 책 제목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요"라고. 에디터님도 기뻤던지 바로 답장을 해주셨다.
'작가님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좋다고 해서 저도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요.'
그렇게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다. 이제 책이 나오면 어떻게 홍보할지 열심히 고민해보던 때였다. 갑자기 에디터님에게서 메일이 왔다.
'작가님, 죄송하지만 ~~~~~~한 이유로 월요일까지 세 편의 글을 추가로 써주셔야 할 것 같아요.'
하늘이 노래졌다. 여기서 어떻게 더 쓰라는 걸까. 마른 수건을 쥐어짠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눈물이 찔끔 나왔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세 편의 글을 쓰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3일. 써야 할 글은 맨 앞에 들어갈 '작가의 말'과 본문에 들어갈 두 편이었다. 작가의 말은 온라인 서점에서 미리보기(책 내용을 30페이지 정도 선공개하는 것)를 할 때도 들어가는 데다, 독자가 읽는 첫 페이지인 만큼 어떤 글보다 공을 들여 써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책 제목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막막한 기분으로 이를 닦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매일같이 떠올리던 '터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면 어떨까. 부랴부랴 핸드폰을 켜서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들을 써내려 갔다. 그리고 남은 두 편의 글은 예전에 써둔 글을 고쳐서 어떻게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