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 흔한 SNS나 블로그도 없었다. 책 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글을 올려본다는 브런치에도 글 한번 올려본 적이 없었다. 나는 유명인도 아니고 특정분야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쌩초보'였다. 업무상 회사에서 글을 자주 쓴다지만 내가 쓰려는 에세이와는 거리가 먼 딱딱한 정보 위주의 글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내 책을 내고 싶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쓰는 이 글이 책이 될지 아닐지도 모르는 채.
*이 글은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받는 아이였다>(클랩북스, 2024)를 쓰고 출간하기까지의 전 과정(2023.4~2024.4)에 대한 글입니다. 책을 내고 싶은 분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어 쓰는 글인 만큼 최대한 담백하고 간결하게 씁니다.
취준생도 아닌데 스터디카페 월 회원권을 끊었다. 우리 동네 스터디카페 월 회원권은 14만원. 출간은 쓰는 돈과 버는 돈으로만 따지면 지독히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일엔 가성비를 따지지 않기로 했다.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월 한 달은 매일 퇴근과 동시에 스터디카페로 출근할 작정이었다. 유치원생 아이를 둔 워킹맘이 스터디카페로 출근하는 건 퇴근 후 아이를 하원시키고 저녁을 먹이고 치우고 나서야 가능하다. 이걸 다 마치고 남편에게 아이를 인수인계하고 나면 밤 9시가 가까워진다. 그때 집 근처 스터디카페로 가서 12시까지 글을 쓰는 것이다.
처음엔 이렇게 했지만 점점 더 시간이 부족해지자 남편에게 부탁해서 아이 저녁 먹이는 일도 남편에게 맡겼다. 남편에겐 “1월 한 달만 함께 노력하자(갈려보자)”라고 말했다. 몹시 미안했지만 내 책 서문에 ‘이 책은 남편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라고 쓰는 것으로 퉁치기로 (나 혼자만) 마음먹었다.
매일 스터디카페 출근하기는 여간해서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었다. 누군가의 야근 또는 회식이라서, 아이 친구네와 같이 저녁밥을 먹어야 해서, 아이가 아파서 하루씩 건너뛰면 주 3~4일 출근이 최선이었다.
하루는 개요를 쓰고 하루는 글을 쓰는 강행군이 계속되었다. 하루에 0.5편씩 쓰는 내가 마치 ‘벽돌깨기’를 하는 슈퍼마리오 같았다. 한 편을 쓰고 카카오톡으로 남편에게 보고하면 남편은 열렬한 답장으로 응원을 보냈다. 거기에 힘을 얻어 다음 글의 개요를 짜곤 했다.
처음엔 한달에 20편이라니 절대 못 해낼 줄 알았다. 그런데 띵! 이게 해보니 되는 거다. 역시 글을 빨리 쓰려면 마감이 있는 게 최고다. 불평할 시간조차 없어서 일분일초까지 아껴 쓰게 된다. 온종일 머릿속에 글 생각뿐이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글을 쓸 수 있다. 사실 출판사에선 꼭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1월 말에 원고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시면 언제든 말씀해달라고, 조정할 수 있다고 따뜻하게 배려해 주셨다. 하지만 일단 정해진 마감이니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다.
지난 몇 달 원고를 안 쓰고 있을 때도 꾸준히 글감을 메모해 왔기 때문에 글감이 부족해서 고민하진 않았다. 오히려 내 안에서 오래 묵힌 글감들이 술술 풀려나왔다. 글 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었다. 글 쓰는 건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힘든데 즐겁다. 즐거운데 힘들다. 그런 일이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이다.
하루는 스티브 잡스의 졸업 연설문에 대한 글을 쓰다가 잡스처럼 나에게 물어보았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오늘 하려는 것-글 쓰는 것-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나는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건 연말에 한 건강검진에서 뜬금없이 뇌종양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뇌 CT를 찍고 결과를 기다리던 열흘 동안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진짜 뇌종양이라도 죽기 전에 이 글은 다 쓰고 죽자.’
다행히 뇌종양은 아니었다.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내가 이 글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지 알게 되었다.
드디어 1월이 끝났다. 스터디카페 월 회원권도 끝났다. 나는 회원권을 더 연장하지 않았다. 원고가 거의 마무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늘 시간이 부족하긴 했는데, 회사에서 설 전에 기적 같은 휴무일을 주었다. 마치 온 우주가 나의 탈고를 도와주는 듯했다. 이대로면 무사히 설 전에 원고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여유가 생기니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이와 평소 자주 들르던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을 때였다. ‘내 책도 여기 이 책들처럼 금세 도로 팔려 나오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내 글은 책이 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 글이 책이 될 거란 확신을 갖지 못했다. 어쩌면 출판사에서 내 전체 원고를 보고 계약을 파기하자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 ‘나는 왜 책을 내고 싶은 건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았다. 한참을 고민한 대답은 이거였다.
첫째, 내 안에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있어서.
둘째, 그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셋째, 그 도움을 주는 방식이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 욕심 때문에.
만약 책이 안 된다고 해도 온라인에 올려서 독자를 찾으면 되잖아, 라고 생각해보았다. 1~2번 대답만 만족하면 충분한 거 아냐, 라고 나를 달래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