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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 Apr 21. 2024

아무것도 없는 초보작가 출간기 2편

계약 편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 흔한 SNS나 블로그도 없었다. 책 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글을 올려본다는 브런치에도 글 한번 올려본 적이 없었다. 나는 유명인도 아니고 특정분야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쌩초보'였다. 업무상 회사에서 글을 자주 쓴다지만 내가 쓰려는 에세이와는 거리가 먼 딱딱한 정보 위주의 글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내 책을 내고 싶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쓰는 이 글이 책이 될지 아닐지도 모르는 채.  


*이 글은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받는 아이였다>(클랩북스, 2024)를 쓰고 출간하기까지의 전 과정(2023.4~2024.4)에 대한 글입니다. 책을 내고 싶은 분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어 쓰는 글인 만큼 최대한 담백하고 간결하게 씁니다.




7월 말, 그러니까 투고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을 즈음 드디어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거절 메일만 받다가 한번 만나서 이야기해보자는 메일을 받은 게 꿈만 같았다. 하지만 곧바로 계약하자는 내용이 아니었기에 미팅 약속을 잡고도 고민에 빠졌다.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 어떻게든 이 출판사를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안에 출판사의 마음을 사로잡을 나만의 무기를 준비해야 했다. 우선 13년 전 내 첫 번째 투고에서 미팅까지 갔지만 결국 계약에 실패했던 원인-원고 분량이 적어서,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라서, 유명인이 아니라서-을 차례로 떠올려보았다. 내가 인플루언서가 아니란 건 어쩔 수 었지만, 나머지는 어떻게든 보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대형서점을 찾았다. 고맙게도 내게 손을 내밀어준 출판사가 어떤 출판사인지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다. 그날 나는 해당 출판사가 낸 책을 모두 읽어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건 아니고 어떤 책인지 찬찬히 훑어봤다. 이제 막 일년된 신생 출판사였지만 여러 분야의 책을 고르게 내왔고 책의 성격에 따라 마케팅 포인트를 잘 잡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표지며 목차도 각 책에 맞게 기획되어 있었다. 대형 출판사의 임프린트라는 점도 믿음을 주었다. 이래저래 이 출판사에서 꼭 책을 내고 싶어졌다.  


사실 나는 딱 한 곳의 출판사에서만 연락을 받았지만 출간 작가 중에는 여러 출판사에서 앞 다퉈 연락을 해왔다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었다(적어도 내가 읽은 투고 후기로 보면). 그런 사람들은 고르고 골라 미팅을 잡고 그 중에서 최종 계약을 했다고 했는데, 신인 작가에겐 바쁜 대형 출판사보다 내 책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줄 신생 출판사가 어울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취지에서 보면 내게 연락을 해준 출판사는 좋은 짝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파워포인트로 다시 기획안을 작성했다. 내게는 출판사를 확실한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기획안이 필요했다. 기존의 출간기획서를 보완할 수 있는 A안과 B안의 해결책을 넣고, 추가원고 작성계획을 목차에 맞춰 상세하게 작성했다. 내가 자체적으로 정한 마감일도 적었고, 부족하지만 앞으로 인스타그램, 블로그, 브런치 등을 통해 홍보하겠다는 홍보계획도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출판사에서 낸 책 하나하나에 대한 분석을 썼다. 기획안을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사실 이거였다.


“저는 첫 책을 내고 싶은 쌩초보 작가이지만 독자들에게 꼭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수 있어요. 마감 시간도 칼같이 지킬 수 있고요. 부족하지만 책 홍보도 열심히 할 거예요. 저는 귀사에 해서도 잘 알고 있어요. 저희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드디어 미팅 날이 되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상수역 앞의 카페로 갔다. 알고 보니 그 카페는 출판사 미팅의 성지였다. 여기저기 기획안을 놓고 머리를 맞댄 사람들이 보였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전에 도착한 나는 미리 컬러로 출력해온 기획안 2부와 일부러 먼데 가서 사온 빵 선물을 안고 초조하게 에디터님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친근한 인상의 두 명의 에디터님을 만날 수 있었다. 에디터님들은 내가 미리 준비해간 자료에 놀라고 감탄했다. 하지만 그 자료보다 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이야기를 더 쓸 수 있는지 궁금해 했다. 그날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카페에서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보면 면접을 보는 기분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인터뷰를 하는 기분 같기도 했다.


에디터님은 헤어지기 전에 나에게 궁금한 게 있으시냐고 물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미리 생각해온 질문을 던졌다.


“제 글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셨어요?”


에디터님은 웃으며 답했다.


“보내주신 원고를 읽고 회의를 하는데 모든 팀원이 ‘단숨에 읽히는 글이다’, ‘주제를 끌고 가는 힘이 있다’라는 평을 했어요. 그래서 뵙자고 말씀드렸어요.”


뜻밖의 감사한 말씀이었다. 덕분에 내내 긴장해 있었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그리고 8월 초, 드디어 메일로 계약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기적이었다! 나는 신나게 상수역 카페로 달려갔다. 계약이라니! 드디어 계약을 하는 거다~! 그날은 출판사에서 미리 서명해온 계약서 2부를 받았다. 고민해보고 2부에 모두 서명을 하여 1부는 내가 보관하고 1부는 출판사로 보내달라고 하셨다.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에디터님이 수정한 목차를 보여주시기 전까진.  


“기존에 쓰신 게 12꼭지니까 24꼭지를 더 쓰셔서 36꼭지로 만들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를 인용한 부분은 덜어내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첫 장에는 000 부분을 추가하고.......”


두둥~! 갑자기 머리가 아득해졌다. 에디터님의 요청사항을 내 식대로 정리하면 이런 뜻이었다.


‘출판사에 투고해주신 원고의 1/2을 덜어낸 다음, 그 분량의 6배로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3. 절망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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