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 흔한 SNS나 블로그도 없었다. 책 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글을 올려본다는 브런치에도 글 한번 올려본 적이 없었다. 나는 유명인도 아니고 특정분야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쌩초보'였다. 업무상 회사에서 글을 자주 쓴다지만 내가 쓰려는 에세이와는 거리가 먼 딱딱한 정보 위주의 글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내 책을 내고 싶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쓰는 이 글이 책이 될지 아닐지도 모르는 채.
*이 글은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받는 아이였다>(클랩북스, 2024)를 쓰고 출간하기까지의 전 과정(2023.4~2024.4)에 대한 글입니다. 책을 내고 싶은 분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어 쓰는 글인 만큼 최대한 담백하고 간결하게 씁니다.
계약서를 받던 날, 에디터님 두 분과 카페를 찾아 상수역 주변을 걸었다.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짙은 초록빛 나뭇잎들 사이로 쨍쨍한 햇빛이 쏟아졌다. 마치 한 움큼의 어둠도 허락하지 않을 듯한 날씨였다.
“겨울에 우울증 환자가 늘어난다는 거 아세요? 사람들은 따뜻한 봄이 오기 전에 가장 우울해진대요.”
내 뜬금없는 이야기에 에디터님은 “그렇겠군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 책은 봄에 내기로 해요. 사람들 마음이 가장 따뜻할 때요.”
그날부터 내 마음속의 데드라인이 정해졌다. 봄에 책을 내려면 겨울에 원고를 마감해야 한다. 남은 기간은 6개월. 그 안에 모든 글을 써내자. 원래도 마감기한을 철저히 지키는 편이라 그 정도면 충분히 원고를 쓸 수 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첫째, 자비출판이 아닌 기획출판(작가는 원고를 쓰고, 출판사는 기획/홍보마케팅/유통을 맡는 구조)을 선택한 이상, 책을 쓰는 일은 처음부터 출판사와 함께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책의 타겟 독자층, 주제, 목차를 정하는 일부터 서로 상의하며 진행해야 했다.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고 나서야 비로소 원고를 수정하거나 추가로 작성하는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작업에만 몇 주가 들었다.
둘째, 출판업계는 직원들의 퇴사나 이직이 비교적 잦다는 것이다. 수정한 원고를 보낸 지 한 달이 넘도록 답장이 없자 내 원고가 모자라서 그런 걸까, 다른 원고로 바쁘신가, 온갖 부정적인 추측만 들었다. 겨우 용기를 내어 소심한 메일을 보내자 에디터님은 곧바로 답장을 해왔다. 메일에는 “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그렇지만 000 에디터님이 이어서 잘 맡아주실 것이다"라며 나를 안심시키는 말들이 담겨 있었다. 순간 띵 하고 머리가 아파왔다. 에디터님의 퇴사와 함께 내 책도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에 그날은 안 마시던 술까지 마셨다.
그렇게 어영부영 8~10월이 지나갔다. 기존에 투고한 원고 12편을 모두 수정했지만 책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탓에 추가 원고는 쓰지 못했다. 11월이 되고 슬슬 찬바람이 불어왔다. 겨울이 다가오는 걸 느끼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더는 책의 방향이 정해지길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혼자서라도 추가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숲을 먼저 봐야 나무가 보이는 성격인지라 좀처럼 글 쓰는 데속도가 붙질 않았다.
그리고 12월, 출판사에선 드디어 새 에디터님이 정해졌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얼른 약속을 잡고 미팅을 가졌다. 새 에디터님과는 그동안 수정한 원고가 아닌 초고를 가지고 처음부터 이야기를 나눴다. 초고에서 절반을 덜어내자는 건 전 에디터님과 똑같은 의견이셨지만, 일단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써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런 것까지 써도 되나 고민될 때는 일단 솔직하고 자세하게 써주시면 좋겠어요. 걱정하지 마시고 글의 톤이 어두워져도 어두운 대로 써보세요. 이후에 저희랑 같이 고쳐나가면 되니까요.”
다정하지만 단단한 말투의 새 에디터님을 마주하니 어쩐지 용기가 났다. 심리학 에세이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왔다는 에디터님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계셔서 그런지 말이 잘 통했다. “에세이는 작가의 색깔이 중요하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분명한 자기 인식을 가지고 써야 하며 글에서도 그런 메시지가 읽혀야 한다”는 에디터님의 말씀은 내가 추가 원고를 쓰는 내내 가슴에 되새긴 말이었다.
드디어 12월 말 미팅 결과를 반영한 새로운 목차가 완성되었다. 내가 초안을 작성하면 출판사에서 컨펌 하는 방식이었다. 이제 진짜로 글만 쓰면 되었다. 그래서 홀가분하게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출판사에서 요구한 마감기한은 1월 말. 앞으로 한 달 동안 주말을 빼고 하루에 1편씩 써야 하는 비상 상황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