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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Feb 03. 2023

치유는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나는 기억이다.



끝나지 않는 불안, 공허함, 우울, 무기력... 우리의 일상을 흔들고 무너뜨리는 감정들이다. 반복되는 부정적 감정들은 필연적으로 신체의 변화를 동반한다. 감정은 감각을 기반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스트레스는 신체 내부의 호르몬을 바꾸고 몸의 자세를 망가뜨리고 근육의 긴장을 고착화한다. 그래서 마음의 병은 몸의 병이 되고 결국 삶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painted by Haewon

괴로움이 삶을 옥죄어 올 때 우리는 고통의 원인을 찾는다. 원인을 찾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자기 살 길을 찾아 움직인다. 


지하실에 처박아 둔 감자도 실낱처럼 들어오는 햇빛을 향해 줄기를 뻗는다. 살 길을 찾는 데 있어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유리한 것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고,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불리한 것은 생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 고통의 원인이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자 때문에, 자녀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돈 때문에, 직업 때문에, 환경 때문에... 그리고 그들과 그것들을 바꾸고 싶어 한다. 


남편이나 아내가 변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고, 아이가 변하면 고통이 끝날 것 같고, 성공을 하면 마냥 행복할 것 같고, 엄청난 부를 얻으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만 같다. 그래서 그들을 바꾸는데 매달리고 부와 성공에 집착한다. 


설혹 이런 문제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충족이 된다 해도 불안은 해결되지 않으며 공허도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밖에 있는 것들이 충족되고 나면 더 큰 공허가 찾아오기도 한다. 내 밖에 있는 어떤 것도 내 삶의 불안과 공허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삶은 본래 불확실한 것이다. 불안은 불확실한 삶의 본질 때문에 인간이 겪는 감정이다. 우리의 삶에서 확실한 것은 오직 삶이 불확실하다는 것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삶의 불확실성을 감당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결국 삶의 불확실성을 감당하는 우리의 힘과 태도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불안에 잠식되거나 불안을 외면하거나 불안을 억압하기만 한다면 삶은 피폐해질 수 밖에 없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바다의 파도와 같다. 

삶은 언제나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파도는 파도의 춤을 출 뿐이고, 파도를 멈추려는 인간의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파도를 누리고 파도를 즐기기 위해서는 파도를 관찰하고 파도를 이해하고 파도 속으로 뛰어들어 파도의 리듬과 같이 춤출 수 있어야 한다.  

   

파도처럼 쉼 없이 출렁이는 내 삶을 감당하는 주체는 바로 ‘자아’이다. 

삶의 불안에 잡아먹히지 않고 압도되지 않는 자아,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고통 속으로 뛰어들어 고통의 숨겨진 의미를 탐구할 수 있는 자아, 삶과 춤출 수 있 수 있는 자아만이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  


 

                                                         painted by Haewon


   

우리가 고질적인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피폐해진 일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아의 힘과 태도가 달라져야만 한다. 자아의 힘은 어떻게 강화하고 자아의 태도는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자아를 다룰 수 있으려면 자아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나’라고 느끼고 규정하는 것일까?  

   

나는 기억이다. 기억이 사라지면 자아가 사라진다.

우리가 기억을 잃는 치매를 두려워하는 것도 자아를 잃어가는 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나’라고 느끼고 규정하는 자아는 과거의 축적이다. 자궁 속에서부터 현재까지 내가 경험한 사건들의 총합이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강물처럼 흘러온 것이다. 현재의 내 삶을 옥죄는 불안, 두려움, 공허, 무기력의 원인은 과거의 내 삶 안에 있다.  

    

그래서 치유는 필연적으로 기억을 다루는 작업이다. 나의 현재 자아에 영향을 끼친 과거의 사건들을 탐구하고 재 경험해서 자아의 내용인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치유 작업의 성패는 나의 자발성과 능동성에 달려 있다. 누구도 나의 춤을 대신 출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춤은 나에게서만 창조될 수 있는 것이다. 치유는 나의 기억을 소환하고 그 속으로 뛰어들어 주체적으로 탐구하고 재구성하는 능동적 과정이다.   

   

고질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기억을 이해해야만 한다. 기억은 무엇인가? 무엇이 기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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