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은 다 사서 할 거야’
제사, 차례만 35년째 지낸 엄마가 비장하게 다짐을 한다. 이번 명절은 절대 하지 않겠노라고. 뭐 별로 믿기지 않지만, 일단 지켜보자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장 볼 리스트를 에이포 용지에 한 가득 적는다.
‘명절 안 한다며! 다 살 거라며!'
‘안 할 건데, 연휴데 가족들 먹을 게 없잖아’
아니 우리가 평소에 꼬치전, 녹두전, 식혜가 맨날 먹었어? 그냥 평소처럼 된장찌개나 먹어. 그리고 엄마 요즘엔 연휴에도 다 배달돼, 하지만 좀.
‘어떻게 연휴 내내 배달을 시켜 먹어, 물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10년째 이 레퍼토리 반복이다. 분명히 안 한다고 했는데 명절 앞에 닥치면 굳이 가족들 먹을 반찬 없다는 핑계로 엄마는 기어코 전을 부친다.
‘비비고 동그랑땡 맛있어, 그거 먹자'
‘집에서 한 게 맛있어. 내가 먹고 싶어서 그래’
아니 왜 명절만 되면 식욕이 돋는 건데? 왜 명절만 되면 평소 먹지도 않는 전을 부치는 건데? 속 터져! 내 만류에도 엄마는 기어코 전 전용 프라이팬을 꺼내 전을 부쳐서 시골로 가져간다. 명절 안 할 거라며!!!
와 진짜 환장하겠다. 옆에서 볼 땐 진짜 미칠 노릇. 누구 하나 고마워하지도 않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명절상을 왜 엄마 혼자서 꾸역꾸역 차리는 건지! 오십 후반의 나이에도 명절 지나면 골병이 나서 앓아눕는 엄마. 이제 제발 좀 그만하자!
엄마는 꾸역꾸역 35년 동안 제사상을 차렸다. 매 번 나랑 말다툼하면서도 매 번 제자리걸음. 제사상 차릴 때마다 천만 원씩 주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이상하게 고집스럽게도 제사 음식을 포기 안 했다.
그 고집이 얼마나 질겼냐면, 일을 많이 해 인대가 늘어져서 팔에 반깁스를 한 상태에서도 한 손으로 동그랑땡을 만들었다. 거기에 고3 동생 당장 학원비 낼 돈도 없어 아등바등하던 시절에도 엄마는 거금을 들여 차례상을 차렸다. 와 단군할아버지 제사상도 이 정성으론 안 만들겠다.
‘엄마는 시댁 식구 안 미워? 뭐 예쁘다고 상을 차려!’
‘...나도 미워, 미운데 제사 지내야 너네들이 잘된데’
나무아미타불 관세 보살!!! 스님, 좋고 좋은 말 다 놔두고, 왜 하필 노동착취를 권유하셨어요? 진짜!!!
아무리 미신이라도, 자식에 관한 말은 쉬이 흘려들으실 수 없으셨을 터. 아마 본인 얘기였다면 그냥 훌훌 털어버렸겠지. 그 말 한마디 때문에 고된 시댁에서 꾸역꾸역 제사상을 차렸구나 엄마는. 감동이라기보다는 마음이 참 쓰리다. 애물단지 자식인 거 같아서.
엄마, 제발 올해는 사서 하자. 할아버지도 제사상보단 엄마가 건강한 게 더 좋으실 거야. 부처님도 누군가의 희생으로 누군가가 행복해지는 세상 말고, 모두가 건강한 세상 원하실 거야. 엄마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