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내린 향긋하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으로 낙엽비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행복이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시골에 살아봐야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단, 노는 것은 도시가 최고다!
이상하게 추워질수록 따뜻한 커피와 빵 생각이 왜 이렇게 나는지. 정말 눈앞에 있으면 끝없이 먹을 수 있다. 전생에 외국사람이었을까? 실제로 해외에 있을 때도 현지 음식에 대해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반면 아내는 생각보다 입이 짧은데 요즘엔 프랑스요리 그만 먹고 한식 먹으면 안 돼?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 가급적 평일에는 한식을 하고 주말에만 프랑스요리를 하려고 조절한다. (한식조리기능사도 도전해야 하나?)
지난 수업 때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디저트를 먹었으니 이제 다시 전통 프랑스요리를 할 시간이다.
12번째 수업은 바로 비엔나풍의 송아지 에스칼로프 팬구이다.
에스칼로프는 고기의 살을 크고 넓적하게 자른 후 밀가루와 빵가루를 묻혀 튀긴 음식이다. 프랑스에에스칼로프가 있다면 오스트리아와 독일에는 슈니첼이 있다. 아마도 슈니첼은 많이 들어봤을 텐데우리나라의 얇은 왕돈가스라 이해하면 쉽다.
기원은 송아지 갈비를 빵가루에 묻혀 튀긴 이탈리아 밀라노의 음식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세가 18~19세기에 오스트리아에 유입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도시 비엔나 스타일로 만들어지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아마 비엔나가 유명하니 이번 요리 제목에 비엔나풍이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가끔 남해에 있는 독일마을을 가는 편인데 갈 때마다 꼭 먹는 요리다.
맥주와 같이 곁들여 먹으면 진짜 환상이다. 독일은 맥주와 잘 어울리는 요리가 너무나 많다.(통풍만 아니라면 매일 맥주를 마셨을 텐데.)
반면 프랑스는 와인과 잘 어울리는 요리가 무지하게 많다. 진심으로 나라마다 술을 맛있게 마시기 위해서 요리가 발전한게 아닌가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갑자기 술로 빠졌는데 다시 요리로 돌아와서 교재에는 에스칼로프와 감자 소테를 곁들여 먹으면 튀김의 맛을 상쾌하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상쾌한 튀김의 맛이 느껴질지 만들어서 먹어보자!
이번 메인요리는 간단한데 장식준비하는데 더 많은 재료가 필요하다. 마트에 앤초비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구입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고기는 송아지가 아닌 다 큰 어른소를 이용하였다.
주재료
소고기 안심, 버터, 쇠고기육수, 버터, 식용유, 소금, 후춧가루
튀김옷(앙글레즈)재료
달걀, 밀가루, 빵가루, 식용유
장식 재료
레몬 슬라이스, 블랙 올리브, 앤초비, 삶은 달걀, 다진 파슬리, 다진 케이퍼
감자 소테 재료
감자, 버터, 식용유, 다진 파슬리, 소금, 후춧가루
재료가 준비되었으면 빠르게 요리를 시작해 보자.
소고기를 랩으로 감싸고 고기망치로 살살 두들겨 넓게 펴준다. 고기 양면을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을 해주고 밀가루를 앞뒤 골고루 묻혀준다. 그리고 고기를 달걀물에 충분히 적혀준 다음 빵가루를 빈틈없이 묻혀준다.
프라이팬에 식용유와 버터를 넣고 고기를 구워준다. 고기가 얇아서 너무 오래 굽지 않아도 되며, 연갈색이 나면 망으로 옮겨서 기름을 빼준다.
이제 감자 소테를 만들어 보자. 감자 껍질을 벗기고 원형 모양으로 돌려 깎는다. 감자를 얇게 썰어주고 물에 담가 전분을 빼준다. 키친타월로 감자에 물기가 없도록 충분히 닦아준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감자가 노릇노릇하게 맛있는 색깔로 변하면 버터를 넣고 고소한 맛을 가미해 주고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을 해준다.
다진 파슬리를 넣고 감자에 충분히 묻도록 섞어주고 그릇에 담으면 완성이다.
접시에 에스칼로프를 담고, 주변에 달걀흰자, 노른자, 케이퍼와 파슬리를 다져서 장식해 준다. 그리고 에스칼로프 중앙에 레몬, 앤초비, 올리브를 올리면 메인요리 완성이다.
그동안 환상적인 요리 사진으로 많은 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요리보다 외적인 장식들이 더욱 부각되어 오히려 요리가 묻혀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앞으로 사진을 찍을 때도 요리에 좀 더 집중해서 찍을 것이다. (사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괜히 찔렸다.)
완성된 요리를 가족과 같이 먹으면서 직설적인 평가를 들어보자!
아내
"고기만 먹을 때는 맛없다. 레몬과 같이 곁들여 먹으니 좋다. 튀김옷이 바삭바삭하지도 않은데 왜있는 거지? 원래 바삭바삭해야 하는데 요리를 잘못한 거 아닌가? 올리브랑 앤초비가 없으면 별로였을 것 같다. 마치 소고기육전을 먹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감자소테는 그냥 감자칩 같다." (맞다. 요리 망했다.)
처제
"싫어하는 부위의 고기인데도 괜찮다. 평소 안심은 퍽퍽해서 잘 안 먹는데 이건 고기망치로 두드려서 그런가 생각보다 부드럽다. 감자소테는 회오리감자 같다."
아들
"(소파에 누워있는 상태로) 맛있다. 아빠 또 줘. 맛있다. 아빠 또 줘. 맛있다. 아빠 또 줘." (상당히 잘 먹는다. 역시 우리 아들 밖에 없다.)
본인
"일단 요리 결과물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빵가루를 골고루 제대로 묻히지 않아서 노릇노릇한 색깔이 구현되지 않았다. 교재에 나온 요리 비주얼과는 너무나 딴판이다. 속상하다. 장식은 교재에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보려 노력해서 그나마 비슷하게 나왔다.
바삭한 돈까스를 생각하고 먹었지만 역시나 빵가루가 부족해서 바삭한 식감은 전혀 없었다. 눅눅한 덜 튀겨진 고기를 먹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올리브와 앤초비, 레몬과 곁들여 먹으니 이상하게도 조합은 괜찮았다. 감자소테도 버터에 구워서 느끼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상하리만큼 오히려 담백하게 느껴졌다."
평가에서도 그렇듯이 요리 미숙으로 너무나 실망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아쉬움이 너무나 남았고 사진을 찍으면서도 속상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결과물이 정말 좋게 나와서 그런지 이번 요리 실패는 나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에스칼로프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생각해 보면 실패를 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자만심과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나? 이번 실패를 교훈 삼아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자만하지 않고 진지하게 임해야겠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며 이번 12번째 요리를 마무리한다. 오늘 요리 끝!! :(
I'll be back.
비하인드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도통 잠을 자지 못했다. 생각보다 승부욕이 강해서 지는 건 참을 수가 없다. 이건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무튼 밤을 지새우고 마트 문 열기만을 기다렸다가 재료를 후다닥 사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에스칼로프 따위 해내고 말겠어라는 다짐을 하고는 다시 시도했다.
그 결과물은 두둥!!
확실히 다른 비주얼이다. 그렇지 이게 에스칼로프지!! 이 정도면 성공이지 않을까?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는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