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수업은 처음인데 살짝 긴장이 된다. 경험 상 요리는 망쳐도 웬만큼수습이 가능한데 디저트는 수습이 거의 불가능해서 새로 하는 편이 더 빠르다.
달달한 디저트가 갑자기 먹고 싶어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없거나 사러 나가기 너무 귀찮을 때 가끔씩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아내는 만드는 게 더 귀찮지 않냐고 늘 물어본다. 난 나가는 게 더 싫다.)
빠르게 먹기 위해서는 정석으로 하지 않고 야매(?)스타일로 한다.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그나마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디저트는 바스크치즈케이크와 티라미수 정도가 되겠다. (난 티라 미숙하다.)
당연히 요리 과정은 프랑스 전통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겠는가. 나의 요리 스승은 예능방송인데.
디저트 관련 얘기를 잠깐 하자면 예전 직장 생활을 할 때 같이 일하던 선배는 늘 일 그만두고 호주로 가서 디저트를 배우겠다고 말했다. 굳이 왜 호주까지 가서 디저트를 배우겠다고 하는지 의아했지만 결국 그 선배는 마흔이 넘어서 일을 그만두고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물론 싱글이라 가능했다.
현재는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문화센터에서강습을 하고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낸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가서본인이 하고픈 일을 위해 새롭게 도전한다는 것에 존경하고 경의를 표한다.그때는 몰랐는데 그 선배가 간다는 제과학교가 바로 르꼬르동 블루였다. 진짜 먹는 거로는 정말 유명한 학교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전통 방식의 수플레는 어떨지 기대를 하면서 11번째 요리 수업을 시작해 보자!
수플레는 밀가루, 달걀, 버터 등을 섞어 만든 반죽을 오븐용 그릇에 담아 오븐에서 부풀려 구워 낸 프랑스의 대표 요리다.
사브리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인 사브리나가 수플레를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참하게 실패를 한다. 실패의 원인은 실연을 당해 오븐을 켜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마음의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난 절대 실패 할리가 없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대중적인 요리지만 생각보다 만들기 까다로운 요리이기도 하다. 수플레가 꺼지지 않고 부풀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오븐에 넣으면 수플레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원리는 달걀흰자의 거품 사이에 유입된 공기가 열에 의해 팽창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신비란 참 대단하다. 아마도 이과 출신은 요리를 잘할 거다.)
요리 제목에서 알 수 있지만 일반 수플레가 아닌 오렌지 리큐르인 쿠앵트로가 들어간 수플레다. 그리고 여기에 오렌지의 향미와 식감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서 오렌지 과육과 필을 첨가하여 만든다.
이제 달콤한 수플레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알아보자.
주재료
오렌지 과육, 오렌지 필, 우유, 쿠앵트로, 달걀노른자, 달걀흰자, 설탕, 밀가루, 옥수수 전분, 바닐라빈, 버터, 슈가파우더
당이 더 떨어지기 전에 수플레를 얼른 만들어서 먹자. 요리 스타트!!
우선 오렌지 필을 만든다. 오렌지를 굵은소금과 베이킹소다로 깨끗하게 씻는다. 껍질을 벗긴 다음 끓는 물에 넣고 살짝 데친 다음 껍질 속에 있는 하얀 부분을 모두 벗겨 낸다. 이때 생선 포를 뜨듯이 최대한 깨끗하게 제거해야 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껍질을 잘게 썬 다음 냄비에 설탕과 껍질을 2:1 비율로 넣고 끓인다. 오렌지에서 물이 나오는데 자작해질 때까지 조려준다. 그릇에 옮긴 후 넓게 펼쳐주고 식혀준다. 맛을 보면 마치 청을 먹는 듯한 느낌이 들고 오렌지의 향과 달달한 맛이 정말 좋다.
크렘 파티시에르(커스터드 크림)를 만들어 보자. 냄비에 우유를 넣고 바닐라빈을 칼로 긁어 알갱이와 껍질을 넣고 끓인다. 달걀노른자와 설탕을 볼에 넣고 거품기로 섞어준다. 그리고 밀가루와 옥수수 전분을 체로 치면서 넣고 섞어준다.
여기에 바닐라빈이 들어간 우유를 조금씩 부어 주면서 섞어 주고 냄비에 다시 옮겨 담고 끓여준다. 끓기 시작하면 다시 볼에 옮겨 담는다. (도대체 몇 번이나 옮겨 담는 것이냐!)
볼에 달걀흰자를 넣고 거품기로 거품을 낸다. 한참 거품기로 저으면 거품이 나기 시작하는데 이때 설탕을 넣는다. 팔운동 하듯 열심히 거품기를 저으면 걸쭉한 거품이 만들어지는데 거품기로 들어 올렸을 때 뾰족한 형상이 나타나면 끝난 것이다.
아까 만들어 둔 크렘 파티시에르에 오렌지 과육과 오렌지 필, 쿠앵트로를 넣고 잘 섞는다. 여기에 거품을 나눠서 넣고 거품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섞어 준다.
수플레 틀에 버터를 바르고 설탕을 골고루 묻혀준다. 여기에 반죽을 부은 후 표면을 매끈하게 정리해 준다.
200도로 예열된 오븐에 넣고 15분 정도 구워준다. 점점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버섯같이 뿅 하고 솟아올랐다. 귀엽다.)
수플레가 꺼지지 않도록 재빨리 오븐에서 꺼내어 슈가 파우더를 뿌려서 마무리하면 요리 완성이다.
긴박한 상황이다. 수플레가 꺼지기 전에 얼른 찍고 먹어야 한다. 서둘러라 사진작가여!!
온 집안이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로 가득 차서 모든 이가 군침을 흘리고 있다. 성질 버리기 전에 얼른 먹어보자.
아내
"오렌지맛과 향이 엄청 세지만 의외로 양이 적다. 오렌지 껍질 특유의 화한 맛이 느껴진다. 냄새는 끝내주게 너무 좋고 수플레 속이 엄청 촉촉하다. 평소 빵에 과일이 섞여 있는걸 안 좋아하는데 이건 거부감이 없다. 단 거 좋아하는 사람은 끝없이 들어갈 것 같다.
난 너무 달아서 두 번은 못 먹겠다. 하나만 먹으면 딱 좋다. 무조건 아메리카노랑 먹어야 한다."
뚱이처제(기존 시식단)
"부드럽다. 크리스마스와 같이 파티에 진짜 잘 어울릴 듯하다. 빵에 건포도 들어간 것 진짜 싫어하는데 이건 좋다.
설탕이 덜 들어가면 좋겠다. 진짜 너무 달다. 이가 시릴 정도로 너무 달다. 먹으니깐 삼겹살과 김치찜이 생각난다. 왜 양이 적은지 알 것 같다. 설탕이 많이 들어가서 살찔 것 같다."
롱스톤처제(객원 시식단)
"달콤하고 수플레 안에 있는 오렌지껍질이 과자처럼 느껴진다. 팬케이크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서와 심사평은 처음이지? 분발하자!!)
본인
"향은 디저트답게 끝내준다. 오렌지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오렌지 리큐르, 오렌지 과육, 오렌지 껍질 모든 게 오렌지로 시작해서 오렌지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감에서 엄청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고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인상 깊었다. 역시 디저트는 달아야지라며 말을 하면서 쓴 에스프레소를 벌컥벌컥 마신다.(오해하지 마시라. 원래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 진짜 시간이 지날수록 수플레가 꺼지는 것이 보인다. 역시 수플레는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먹어야 한다더니 그 말이 진짜였다."
아내와 처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여서 원기회복(?)을 위해서 디저트를 만들어 봤는데 성공적이다. 다들 수플레를 먹고 나서 건강식이 생각난다고 하니 수플레는 입맛을 돋게 만드는 보양식임에 틀림없다.
달콤함의 끝장을 봤으니 당분간은 멀리해야겠다.
이번 요리 수업도 성공!! :)
비하인드
평소에 앞치마를 하지 않아서 요리를 하고 나면 항상 옷이 엉망이 된다. 기왕이면 멋진 앞치마를 하겠노라 다짐하지만 인터넷으로 르꼬르동 블루 앞치마라고 검색을 한다. (르꼬르동 블루에 미친 사람이다.)
그런데 런던 학교에 앞치마를 판다는 소식에고민 없이 결제 버튼을 꾹 눌렀다. 일주일 기다린 끝에 런던발 앞치마가 도착했다. 솔직히 별거 없는데 하얀 앞치마에 학교 이름이 수놓아져 있는 게 전부다. 그래서 더욱 멋지다. 여백의 미!! (아내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