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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숲 Jun 09. 2022

매일매일의 사소함, 그 위대한 버팀목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닌 일은 없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멀리 사는 친구도 아닌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연락조차 못하고 지냈는지 모르겠다. 핑계를 찾자면 방역수칙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소소한 수다조차 나눌 마음의 여유가 없었음을 나는 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쭉 지켜봐온 친구다. 나는 그 친구가 대학을 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직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어떤 연애들을 했고, 결혼 후 아내로서, 엄마로서 어떤 선택들을 하며 살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친구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도 모르는 게 없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못 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쏟아내며 울고 웃었다. 부모님의 건강, 남편의 근황(혹은 뒷담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걱정 등등. 그리고 무기력 증에 빠진 나의 일상을  토로했다. 아무 의욕도 없이 아무것도 안 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나의 푸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친구는 엷은 미소와 함께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친구네 동네에 기둥만 우두커니 서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죽은 게 아닐까?’ 나무 앞을 지날 때마다 나무의 생사를 걱정할 만큼 나무는 싹 틔울 기미조차 없이 몇 년을 서있기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올봄, 죽은 줄만 알았던 나무에서 드디어 연둣빛의 새싹이 움트기 시작했단다. 그것을 본 친구는 마음에 큰 울림을 느꼈다고 했다.

저 나무는 싹을 틔우기 위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구나!

아...! 그 나무는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그 시간을 버티고 있었던 것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는 조용히 땅의 영양분을 흡수하고, 태양의 에너지를 받으며, 바람의 기운을 느끼면서 때를 기다렸으리라. 그때를 위해 자신만의 속도로 시간을 견디며 홀로 애썼을 나무를 생각하니 짠했다. 결국 싹을 틔워 그때를 맞이한 나무가 기특했다. 나도 그런 나무이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애당초 아무것도 안 하고 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적어도 숨은 쉴 테니 말이다. 끊임없이 들숨을 마시고, 날숨을 뱉으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산다며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결과물에만 집착하느라 과정을 하찮게 여겼다. 남의 가치에 맞춰 사느라 정작 내가 매일매일 해내고 있는 사소한 일들에 가치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나의 일상을 부정해왔다.

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네 가족들>에서 나오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해야 해.
그것이 삶을 이루는 버팀목이니까.

최근 나를 버티게 해준 사소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몇 주간의 나를 돌아봤다. 나는 도망치듯 닥치는 대로 소설책만 읽었고, 코바늘 뜨개로 연신 컵 받침만 떠댔다. 그러면서도 두 딸을 건사했고, 최소한의 집안일도 그럭저럭 해냈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무기력한 사람치고 꽤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일들에 의미와 가치를 두지 않았을 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나를 숨겨 준 책갈피
생각정리의 흔적들, 티코스터

그제야 알았다. 그동안 나는 책 속에서 위로와 용기를 찾고 있었다는 걸. 뜨개질을 하면서 엉켜버린 생각의 실타래를 풀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이 또한 과정임을 인정해야 했다. 나도 그 나무처럼 나만의 속도로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심 기대하던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친구는 내가 딱 듣고 싶어 한 말을 해줬다.  

“어쩐지. 뭔지 모르지만 예전의 너랑은 좀 달라진 것 같더라니. 이번엔 진짜 뭔가 곧 시작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앗! 정말?”

그 어느 때보다 변화에 목말라 있던 나였기에 달라졌다는 친구의 말이 세상 고맙고 반가웠다. 그 말은 단비가 되어 가물었던 내 마음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를 쭉 지켜봐온,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친구의 말이라 더 의미가 컸다. 친구가 그렇다면 그건 진짜일 테니까. 그래서 말인데 어쩌면 나, 조만간 뭐든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으로 살짝 설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밑바닥까지 솔직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참 든든한 하루였다.


다음에 친구를 만나면 나무의 안부부터 물을 것 같다. 초록 잎이 무성해진 나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새 또 자랐겠지? 부디 안녕하길. 그땐 나도 자라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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