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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나나 Jul 24. 2022

공원 01-아무것도 살지 않는 생태 연못에 대하여

자연스럽고 인위적인 적막함

겨울 내 말라있던 연못이 생태 연못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졌다. 누런 물이 반쯤 투명하게 자갈밭을 메꿨다. 작은 잉어라도 풀어놓지 않았을까 싶어 유심히 바닥을 살폈으나 소금쟁이인지 벌레들만 수면을 옮겨 다닐 뿐 아무것도 없다. 도심의 생태 연못이란 텅 비어있는 상태를 뜻하는가 보다.

겨울의 연못부지를 기억한다.


과연 이곳을 연못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푯말에 붙여져 있는 대로 불러보기로 하자. 나는 이곳의 겨울을 기억한다. 물풀이 누렇게 변색되어 중간중간 세워진 돌화분 속에 누워있고 바닥의 자갈들은 삶에서 수분이라곤 알지 못한 것처럼 버석하게 말라있었다. 중간중간에 분수대가 서있는데 작동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녹이 슬었다. 그래도 녹색을 유지하는 나무들 사이로 작은 연못 부지는 색을 모조리 잃은 것처럼 허옇게 말라있었다.


그래도 마른 공간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회색의 산책로 옆으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못하는 어떤 공간이 있다는 것과 그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겨울에 산책을 나설 때면 꼭 들러서 마른 자갈들을 계속 봤다. 그 너머 나무들과 마른 수풀 사이를 겨울바람이 날카롭게 흘러가는 모양새를 계속해서 봤다. 사람이 꾸며 놓았지만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빈 공간의 적막함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인위적인 것일까? 어쨌든 도심에서 고요함은 귀한 것이다. 그래서 그곳의 자연스러운 듯 인위적인 고요를 난 좋아했다. 집에서 조금 더 걸어야 나오는 공원까지 굳이 걸어 나오는 이유였다.


겨울이 지난여름의 연못은 여전히 조용하다


그러다 날이 풀리고 새 한 마리 날아들지 않던 공간에 대충 물을 채워 넣자 비록 아무것도 살고 있지 않지만 이곳은 생태 연못이 되었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던 마른 공간은 아이들이나 어른들도 이따금 잉어든 미꾸라지든 살아있는 존재를 찾아보기도 하는 공간이 되었다. 대충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는 물웅덩이는 금세 사람들의 흥미를 잃는다. 머물렀다 떠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멈췄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다. 구석의 나무 벤치에서 사람들이 흘러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으면 그 간극이 어지럽다. 낡은 펜스 밖으로 부산스럽고 활기차게 지나쳐가는 사람들과 다르게 안 쪽의 어디에도 흘러가는 곳이 없는 연못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여전히 그대로 적막하다. 겨울과 다른 점은 이따금 이름 모를 산새 같은 것이 찾아와 목욕을 한다. 소금쟁이와 장구벌레와 산새의 몸짓이 그대로 수면 위에 남는다.


아하, 이 것은 지나가는 것들의 생태 연못이다. 남아 있을 것은 없다.


머무를 사람들보다 곧 떠날 이들이 많은 이 원룸촌 속의 공원은 마치 말라비틀어진 생태 연못과 마찬가지이다. 매달 작고 큰 이삿짐 트럭이 좁은 골목 사이를 누빈다. 이 동네는 겨울의 생태 연못이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사람들 속에서 안에 고여있는 것들은 버석하게 말랐나 보다. 요즘은 비가 자주 내려 하늘까지 잿빛이노라면 온 동네가 색을 잃는데 곧잘 우울에 빠지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를 다시 찾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울감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르기 쉽다.


그러면 얼른 또 산책길에 나서야 한다. 조금 말라도 자갈은 쉽게 부스러지지 않는다. 그러다 언젠가 물이 차오르면 나도 참새 정도는 되어서 날개를 털고 날아갈 정도는 되겠지. 참새 정도는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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