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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태윤 Apr 20. 2023

집사의 슬픔에는 꾹꾹이가 명약

태안집사의 신혼일기 2

 나는 10년 가까이 한 회사를 다녔다. 전공을 살려 취업했고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도 느끼며 다니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내가 어느 정도 타성에 젖어 다니던 차에 회사 윗선의 교체와 사내 분위기 변화로 인해 주변의 다른 직원들이 하나 둘 관두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나름 잘 버티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힘든 일까지 겹치자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져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태안으로 내려왔다.


 멋모르던 신입시절을 지나 직급을 달고 쉼 없이 달려오면서 일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고 쉬고 싶던 차에 일을 관두니 처음에는 홀가분했다. 하지만 내가 일을 관두고 쉬고 있을 때 나와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나 친한 친구들이 승진도 하고 성과도 내고 하자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트랙에서 벗어나 주저앉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도 '경단녀'가 되면 어쩌지? 어느 정도 쉬었으니 일을 찾아보았는데 특수한 전공과 직종을 가졌기에 서울이 아니고서야 경력을 살려 일할 회사가 없었다. 전공을 버리고 아예 새로운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에 이력서를 몇 개 내봤는데 경력은 과장급인데 해당 업무도 모르고 전공도 아닌 사람을 채용해 주는 곳이 없었다. 욕심을 많이 내려놓고 낸 곳에서도 떨어지자 급격하게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소속된 몇 개의 무리가 있다. 고등학교 친구 모임, 대학교 친구 모임, 전 직장 동료들 모임 등. 태안에 처음 왔을 때는 사람에게도 많이 실망하고 질린 상태여서 딱히 친구들이 보고 싶거나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서울 살 때 퇴근 후에 종종 친구들을 만나 커피 한 잔, 술 한 잔 했었는데 이제는 나는 그런 번개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되었다. 각 잡고 주말에 서울에 올라가 종종 친구들을 만났지만 친구들이 대화 흐름에 못 낄 때마다 속상했다.


 점차 울적해지던 차에 고양이를 입양했다. 서울에 살 때부터 1년을 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실행은 하지 못하던 차였는데 인터넷에서 고양이 입양글을 보았다. 고작 이사를 이유로 파양 된 고양이였는데 사진 속 고양이의 초록색 눈이 자꾸 생각났다. 몇 번을 고민하다 서울까지 가서 그 고양이를 데려왔다. 호랑이 같은 무늬를 가졌기에 '호야'라고 이름 지어줬다.


 고양이 종에 대해 잘 모르고 오직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입양했는데 우리 호야는 3대 지랄묘라고 불리는 뱅갈고양이였다. 호야는 우리 집에 온 첫날 베란다 문을 스스로 열었고 며칠 뒤엔 전선과 벽지를 뜯었다. 밥 달라고 꼭두새벽부터 울고 놀아달라고 보챘다. 컴퓨터 모니터, 마우스를 비롯한 물건 여기저기에 호야의 이빨자국이 생겼고 직접 서랍을 열어 서랍 속 물건도 꺼냈다. 강아지는 바닥만 조심하면 됐는데, 고양이에겐 한계란 없었다. 


 호야가 귀엽지만 힘들었다. 가뜩이나 울적한데 고양이는 자꾸 사고를 치고, 얘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고 밥 챙기고 똥 치우고 털 빗어주고 양치시키고 그 모든 게 지쳐갔다. 입양 전에는 퇴근하면 열심히 돌보겠다는 남편은 귀여워만 하지 사냥놀이나 빗질, 양치 같은 일들은 나에게 떠맡겼다. 괜히 입양했나? 하는 생각도 들던 차에 호야가 또 소변 실수를 해서 빨래에 청소를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말도 못 알아듣는 고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


 "제발, 제발 좀 얌전히 살자. 응? 제발. 사고 좀 그만 쳐"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나보고 호야를 보면 항상 너만 바라보고 있다는 말을 했다. 호야가 내가 왔다 갔다 할 때는 졸졸 쫓아다니고 한 곳에서 무언가를 할 때는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남편말을 듣고 관심을 가지고 보니 정말 호야는 계속 나를 지켜보거나 따라다니고 있었다. 졸졸 쫓아다니는 건 알았는데 가만히 있을 때도 눈을 떼지 않는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소파로 가면 소파로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앞으로 나만 바라보는 고양이에 피식 웃음이 났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발 앞에 와서 발라당 누웠고 외출하고 돌아오면 현관 앞에 나와 냥냥하고 울며 반겼다. 낯선 사람이 오면 쪼르르 내 뒤로 숨고, 병원에 가면 덜덜 떨고 울다가 나에게 앞발을 내밀며 안아달라고 한다. 그렇게 무서워하다가도 내가 안아주면 진정하는 호야를 보면서 가슴이 몽글몽글 해졌다. 


 내가 소파에 앉으면 호야가 쪼르르 와서 무릎에 안고, 누우면 옆구리나 다리사이에 와서 눕는다. 그러고는 꾹꾹이라고 앞발로 안마를 하듯 나를 꾹꾹 눌렀다. 호야의 그런 애정표현이 점점 사랑스러워졌다. 호야가 사랑스러워지고 호야에게 정이 들 수록 내 안에 있던 슬픔이 말라갔다. 


 호야는 여전히 사고를 친다. 깔끔하고 심플했던 우리 집은 서랍 잠금장치, 전선 보호관으로 너저분해졌고 찢어진 벽지 여기저기에 시트지가 붙여졌다. 나는 늘 아침 일찍 일어나 호야의 물을 갈고 밥을 준다. 규칙적으로 털을 빗어주고 양치를 해주며 귀찮은 일들도 여전하다. 오늘도 나는 호야에게 말한다.


 "이구~ 이눔시키! 또 물어뜯었어? 거기 둔 언니 잘못이지 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 그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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