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은 왜 이렇게 언니를 좋아하는 것일까
“언니, 나 여자친구 생겼어.”
대다수의 레즈비언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언니를 좋아했었다. 그리고, 많은 레즈비언들이 그러하듯, 언니와의 연애에 성공한 적은 없다. 다들 언니를 좋아하는데, 언니를 만나는 사람은 몇 안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언니를 만나는 걸까? 그런 의미로 보면, 지금 내 여자친구는 나보다 연하이니까.. 언니를 만나고 있는 셈이다. 진정한 승자구만.
내가 좋아했던 효진 언니는 4월, 봄에 태어났지만 겨울 같은 차가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게 참 매력적이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책임지고 열심히 하면서 공주처럼 대해주는 것을 마음껏 즐기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 언니는 전형적인 헤테로(*이성애자)였다.
“네가 남자였으면 좋았을 텐데.”
진부하다 진부해. 헤테로들은 이런 말들을 참 잘도 한다. 언니는 나와 밤새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내가 ‘남자가 아닌 것’에 대한 아쉬움을 참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는 했다.
어린 시절의 사진을 공유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던 비밀을 속삭였으면서도. 차려입고 단둘이 데이트를 하고, 불 꺼진 침대에 같이 누워 팔베개를 하고, 그러다 친숙하게 서로 입술을 맞대기도 했으면서 나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정말 단 한 번도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모른 척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지만 언니를 좋아할수록 내가 너무 다쳤다. 고백도 당연히 해봤다.
“나도 너 좋아하지! 근데,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사귀는 거야?”
진지한 고백을 두고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깔깔거리며 웃던 효진 언니. 이 사람을 더는 좋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언니와 좀 거리를 두고 지내다가 나에게 여자친구가 생겼고, 언니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했다. 언니는 한 번도 대답이라는 것을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오묘한 말투로 “그렇구나.”라고 했다.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에 언니가 지었던 표정이 머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배신’, ‘혐오’에 가까운 표정.
이미 내가 고백했을 때부터, 그전부터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알았잖아. 대체 왜 이제야 알게 된 것처럼,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건가요? 애초에 기대는 없었지만, 당연히 축하도 없었다. 언니는 원래부터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날부로 사라졌다.
* 인물명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