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플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이제는 없어진, 버터문어가 맛있던 그 가게. 그 술집의 직원은 모두 여자이고, 손님도 여자다. 화장실이 두 개 있고, 남자/여자라고 적혀있지만 사람이 많으면 남자 쪽에도 여자가 들어간다. 사람이 많더라도 대개 여자 쪽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편인데, 무거운 화장실 철문을 열 때마다 왠지 모르게 설레는 것이다. 섹시한 언니들이 키스를 갈기고 있을 것만 같다, 고 말하면 나 좀 이상한 사람이 되려나.
그 가게 근처에만 가도 여자애들이 곳곳에 전봇대처럼 서서 담배를 쭉쭉 피우고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그 앞으로 지나야 하는 상황이 오면 아주 빠르게 내 몸이 스캔당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주 불쾌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아주 짜릿하기도 한 그 눈들. 엄청난 시선과 뿌연 담배연기를 뚫고 들어가면 시끌벅적한 내부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말 그대로 진짜 '나 같은 사람들'. 처음 여기에 갔을 때 솔직히 적잖게 충격받았다. 나랑 똑같이 생긴 여자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 것은 처음 봤다. 짧은 머리에 안경, 심지어 메탈 시계까지. 너무한 것 아닌가?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여야 한다는데. 이건 뭐. 총알 탕탕 정도로는 해결이 안 되고, 폭탄 하나는 터뜨려야 할 수준이다. 어째서 이렇게 다 똑같이 생긴 모양일까? 어떤 모임을 나가도 외관상 나와 비슷하게 꾸민 사람을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여기에서 나는 그냥 복제품 24호쯤 되는 것 같았다. 몇 년이 지났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제는 도플갱어들 사이에서 묘한 안정감과 여유를 느끼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부분에서 좀 괴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술집에서 가장 언니가 되어있는 기분 같은 것.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왁자지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어린 신생 레즈비언들 사이에서 낡은 고인물이 되어버린 레즈비언. 이게 내 정체성일까? 믿을 수 없다.
더 낡기 전에(?) 어플을 깔았다. 다들 그렇게 어플을 한다길래. 문명의 이기를 나도 좀 누려보자. 용기인지 오기일지 모르는 감정을 꾹 눌러 담아 이쪽 어플을 깔아봤다. 여태까지는 ‘자만추’로 자연스럽게 연애를 해왔기 때문에 어플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을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겁이 났다.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불쑥 만날 수 있을까? 다들 어떻게 그래?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그래도, 이쪽 친구도 몇 명 없는데. 친구든, 연인이든 상관없으니. 한 번 부딪혀보자.
어플을 깔고 보니까, 근처에 이쪽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알 수 없는 소속감이 들었다. 다들 숨어 있어서 그렇지 되게 많잖아? 며칠 동안은 그렇게 사람 구경만 해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일반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 단발 이상을 선호하는 사람. 아니, 대체 머리카락 길이가 왜 그렇게 다들 중요한 것일까? 남자 친구랑 셋이서 같이 섹스할 레즈비언 파트너를 구한다는 여자도 있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서 가입한 걸까? 나만 빼고 다들 이상하고 재미있게 살고 있네 아주! 별 사람들이 다 있어 당황스러웠다. 이게 대체 무슨 세상이람? 세상은 요지경이다.
그렇지만 이 혼란 가운데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한눈에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이런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구나. 아 이거, 재미있네.
처음에는 매칭이 되더라도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집어던지고 아무 말도 못 했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비어 있는 채팅 창을 노려보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니 매칭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겁쟁이가 용기를 내서 오프까지 시도하기에 이른다. 어떤 언니는 술 한 잔 먹고 취해 잔뜩 풀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어떤 사람은 몇 개월을 알쏭달쏭하게 지냈지만 애매한 관계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물론 나쁜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이 잘 통하는 친구도 만들었으니까.
몇 번의 오프를 가지지도 않았고, 그렇게 최악인 사람만 만난 것도 아닌데... 인류애가 정말 파사삭 식었다. 20명 정도는 만나봐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0명이라니. 그건 자신이 없어요. 내향형 인간으로서, 20명까지는 도저히 만나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나는 안 될 거야. 역시 어플은 지우는 게 좋겠다. 자연스럽게 만나면 되지!’ 하고 어플을 삭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며칠 뒤, ‘아, 근데 또 그렇게 만나기가 쉽지는 않잖아.’ 하면서 다시 깔고……. 그렇게 어플을 지웠다 깔기를 두 번인가 반복했다. 나중에 주변인들에게 들어보니 기본 세 번씩은 어플을 지웠다가 다시 설치한다더라. 나 되게 평균적인 레즈비언이구나.
어플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정말로 현실에서 가능한 것일까..? 아, 이 지긋지긋한 레즈비언의 삶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