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글루 May 08. 2023

낡고 지친 레즈비언의 이쪽 어플사용기(2)

당신이 어떤 김치찌개를 먹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저녁은 뭐 드셨나요?



 아, 김치찌개 드셨구나. 뭐지. 이제 어떤 김치찌개를 먹었는지 다시 물어야 되는 것일까, 고민하다 핸드폰을 엎고 하품을 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 너무 지루해. 사실은 하나도 관심 없다. 이런 것들을 미주알고주알 물어보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못 견디게 지루했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겨야 그의 일상이 궁금한 것이 수순 일 텐데. 어플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관심도 없는 상대의 일상을 궁금해하며 물어보고, 그러다 이야기가 진전되면 만나고. 이게 맞나 싶었다. 다들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와 연락을 이어가고, 대화를 반복하면 할수록 질렸다. 인사하고, 껍데기만 훑다가 사라질 사람들. 아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이럴 바에는 저 멀리 몽골의 유목민이 되어, 지평선에 이는 흙먼지를 바라보며 크게 한 숨 몰아쉬는 것이 오히려 삶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폐에 모래 바람이 들어차도 좋을 것이다.


 인간으로부터, 쉬고 싶었다.


 누구와도 열심히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누구랑도 잘 맞춰지지 않는 것 같고, 에너지를 깎아가면서 그렇게 누구와 잘 맞춰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누군가와 연락하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자꾸 조바심이 났다. 연애가 삶의 전부도 아닌데 왜 자꾸 누굴 만나려고 하는 것일까? 뭐가 문제일까?


 철저히 혼자이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와 지독하게 얽히고 싶은 마음은 서로를 자주 후드려 패는데, 어느 한쪽도 시원하게 이기지 못했다. 허공에 하는 주먹질이 어느 순간 물속에서의 자맥질이 되었다. 잠길 수는 없지. 가라앉지 않기 위해 계속 이어지는 조악한 발버둥. 수영도   모르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깊은 바다까지 떠밀려온 것일까? 여기는 망망대해. 아니, 막막해.


 이 단어가 실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관계중독’인 것 같았다. 정확히는 ‘연락중독’.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보니 어느 순간 핸드폰이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머리 안에서 위험 신호가 울리고, 알럿창이 떴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 확인 / 취소 ]


 사람과 조금이라도 연결되어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안달 나 있는 나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꼴사납고, 한편으로는 속상했다. 사람 때문에 아파 놓고서 또 사람을 찾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다. 다른 사람을 찾다가 나를 잃을 수는 없지. 스스로 토닥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뭐 해 줄까? 나에게 뭐가 좋을까? 일단 핸드폰부터 좀 덜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동네 미술학원을 끊었다.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으리라.





 어느 날,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다. 갑자기 이상형은 왜 묻냐며 웃으면서 대답을 피하려고 했는데, 집요하게 물어 댔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도 없냐며 이상형을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선생님 말은 또 잘 들어야지. 이상형을 떠올려보았다.


 “글쎄요, 딱히 없기는 한데. 저는…. 우선 말이 잘 통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큰 불편함 없이 재미있게 이야기가 잘 이어지는 것?”

 “맞아. 말 잘 통하는 거 중요하지. 또, 뭐가 더 있을까요?”

 “또…. 아, 절제할 줄 아는 사람? 자기주장이 있으면 좋을 것 같고요.”

 

 선생님은 맞다, 맞다. 좋다, 좋다며. 격하게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본인의 주장이 있으면서도 내 주장도 존중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에게 좋을 거라고. 그런 사람을 만나라고 당부했다. 말로는 참 쉬운데 어디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만난다고 한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요 제가? 좋은 사람은 이마에 ‘좋은 사람’이라고 적어두면 안 될까요?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삼켰다.


 이 사람은 이 부분이 좋고, 저 사람은 저런 부분이 좋네. 한 때는 모든 사람을 좋아했다. ‘대가리 꽃밭’, 그건 진짜 나를 수식하는 말이었는데, 사회생활이 이렇게 무섭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이 싫어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모든 부분을 조목조목 싫어하면서, 모두가 싫기 때문에 아무나 붙잡고 늘어지려고 하는 것만 같아서, 그런 내가 괴롭다.

 중고 판매 어플에 ‘나눔’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내 마음을 올려 둔 기분. ‘나눔’이라는 단어에 알림 설정을 해 둔 이들이 군침을 삼키며 달려올 것을 알면서도. 어플에 올린 프로필을 수정해보는 것이다.


 아아, 환멸 나는 레즈비언의 삶이여.






이전 09화 낡고 지친 레즈비언의 이쪽 어플사용기(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