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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글루 May 04. 2023

낡고 지친 레즈비언의 이쪽 어플사용기(1)

어플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이제는 없어진, 버터문어가 맛있던 그 가게. 그 술집의 직원은 모두 여자이고, 손님도 여자다. 화장실이 두 개 있고, 남자/여자라고 적혀있지만 사람이 많으면 남자 쪽에도 여자가 들어간다. 사람이 많더라도 대개 여자 쪽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편인데, 무거운 화장실 철문을 열 때마다 왠지 모르게 설레는 것이다. 섹시한 언니들이 키스를 갈기고 있을 것만 같다, 고 말하면 나 좀 이상한 사람이 되려나.


 그 가게 근처에만 가도 여자애들이 곳곳에 전봇대처럼 서서 담배를 쭉쭉 피우고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그 앞으로 지나야 하는 상황이 오면 아주 빠르게 내 몸이 스캔당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주 불쾌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아주 짜릿하기도 한 그 눈들. 엄청난 시선과 뿌연 담배연기를 뚫고 들어가면 시끌벅적한 내부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말 그대로 진짜 '나 같은 사람들'. 처음 여기에 갔을 때 솔직히 적잖게 충격받았다. 나랑 똑같이 생긴 여자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 것은 처음 봤다. 짧은 머리에 안경, 심지어 메탈 시계까지. 너무한 것 아닌가?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여야 한다는데. 이건 뭐. 총알 탕탕 정도로는 해결이 안 되고, 폭탄 하나는 터뜨려야 할 수준이다. 어째서 이렇게 다 똑같이 생긴 모양일까? 어떤 모임을 나가도 외관상 나와 비슷하게 꾸민 사람을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여기에서 나는 그냥 복제품 24호쯤 되는 것 같았다. 몇 년이 지났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제는 도플갱어들 사이에서 묘한 안정감과 여유를 느끼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부분에서 좀 괴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술집에서 가장 언니가 되어있는 기분 같은 것.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왁자지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어린 신생 레즈비언들 사이에서 낡은 고인물이 되어버린 레즈비언. 이게 내 정체성일까? 믿을 수 없다.






 더 낡기 전에(?) 어플을 깔았다. 다들 그렇게 어플을 한다길래. 문명의 이기를 나도 좀 누려보자. 용기인지 오기일지 모르는 감정을 꾹 눌러 담아 이쪽 어플을 깔아봤다. 여태까지는 ‘자만추’로 자연스럽게 연애를 해왔기 때문에 어플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을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겁이 났다.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불쑥 만날 수 있을까? 다들 어떻게 그래?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그래도, 이쪽 친구도 몇 명 없는데. 친구든, 연인이든 상관없으니. 한 번 부딪혀보자.


 어플을 깔고 보니까, 근처에 이쪽 사람들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없는 소속감이 들었다. 다들 숨어 있어서 그렇지 되게 많잖아? 며칠 동안은 그렇게 사람 구경만 해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일반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 단발 이상을 선호하는 사람. 아니, 대체 머리카락 길이가  그렇게 다들 중요한 것일까? 남자 친구랑 셋이서 같이 섹스할 레즈비언 파트너를 구한다는 여자도 있었다.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서 가입한 걸까? 나만 빼고 다들 이상하고 재미있게 살고 있네 아주!  사람들이  있어 당황스러웠다. 이게 대체 무슨 세상이람? 세상은 요지경이다.

 그렇지만 이 혼란 가운데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한눈에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는구나. 이런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구나.  이거, 재미있네.



 처음에는 매칭이 되더라도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집어던지고 아무 말도  했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비어 있는 채팅 창을 노려보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니 매칭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겁쟁이가 용기를 내서 오프까지 시도하기에 이른다. 어떤 언니는    먹고 해 잔뜩 풀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어떤 사람은  개월을 알쏭달쏭하게 지냈지만 애매한 관계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물론 나쁜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이  통하는 친구도 만들었으니까.


  번의 오프를 가지지도 않았고, 그렇게 최악인 사람만 만난 것도 아닌데... 인류애가 정말 파사삭 식었다. 20 정도는 만나봐야 좋은 사람을 만날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0명이라니. 그건 자신이 없어요. 내향형 인간으로서, 20명까지는 도저히 만나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나는   거야. 역시 어플은 지우는  좋겠다. 자연스럽게 만나면 되지!’ 하고 어플을 삭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며칠 , ‘, 근데  그렇게 만나기가 쉽지는 않잖아.’ 하면서 다시 깔고……. 그렇게 어플을 지웠다 깔기를  번인가 반복했다. 나중에 주변인들에게 들어보니 기본  번씩은 어플을 지웠다가 다시 설치한더라.  되게 평균적인 레즈비언이구나.


어플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정말로 현실에서 가능한 것일까..? ,  지긋지긋한 레즈비언의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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