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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글루 Apr 20. 2023

없어진 것들을 하나씩 눈치채며, 부재를 실감했다.

모카포트가 없어서, 커피를 내릴 수 없어서 울었다.



'여태 뭘 했던 것일까?'



 말도 안 된다고 몇 번을 되뇌었다. 정말 이게 다일까? 내 사랑이, 내 삶이 이게 다라니. 사라진 의미들. 헤어지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은 ‘허무’였다.


 어린 왕자가 찾아온다면 재미없어서 침만 뱉고 돌아갈 작고 볼품없는 행성이  기분. 퇴출당한 명왕성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134340 플루토, 행성 퇴출.

 한때 사랑이었으나 이제는 사랑으로 구분되지 않는 . 우리는 그런 것을 했다.


 지금의 취향을 온전히 내 취향이라 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당신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나일까? 나는 누구인가? '지금의 나'는 10년 동안의 내가 만들어왔다고 생각하며 10년의 노력에 대한 성과를 측정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렇다면 지난 10년. 이 사랑의 성과는 어떻게 측정을 해야 되는 것일까?


 남아있는  사람의 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막막해 멍하니 서있다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내리러 부엌에 갔다. 그런데 찬장에 모카포트가 없었다. 없어진 것들을 하나씩 눈치채며, 부재를 실감했다. 모카포트가 없어서, 커피를 내릴  없어서 울었다.


 그렇구나. 정말 없다.






 ‘트롱프뢰유(trope l’oeil)’라는 그림 기법이 있다. 실제의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 ‘살바도르 달리’로 대표되는 그런 그림들. 일명 ‘속임수 그림’을 칭하는 말.


 혼자 지내면서  번인가  사람의 잔상을 마주했다. 속임수 그림 같은 모습으로. 철저하게 사실처럼 묘사된 그의 잔상들. 춥다고 이불속으로 뛰어들어오는, 잔소리를 하기 위해 나를 부르는, 요리를 하다가 신나서 춤을 추는  사람. 디테일한 잔상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럴  알았다면, 사랑하지를 말 걸. 애초부터 같이 살지를  . 가당치도 않은 후회를 해보았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겠지. 어리석다.


 아무렇지 않다가 어느 날은 난데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게 무슨 눈물인지,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강아지가 다가오더니 눈물을 핥았다. 미안해.  슬픔을 먹게 해서 미안해. 따뜻함이 닿으니 그제야 울음이 소리를 냈다.



 누가 그랬다. 이별은 삶에서 그 사람을 도려내는 일.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죽음과도 비슷해 애도기간이 별도로 필요하다고. 갑작스레 끝난 관계에 대해 적응할 기간을 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 정말로 끝났다. 강아지와 고양이 앞에 앉아 당부한다. 이제 그 사람은 더 이상 오지 않으니까 너도, 그리고 너도. 더 이상 기다려서는 안 돼. 나도 마찬가지야. 이건 우리 모두에게 하는 당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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