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포트가 없어서, 커피를 내릴 수 없어서 울었다.
말도 안 된다고 몇 번을 되뇌었다. 정말 이게 다일까? 내 사랑이, 내 삶이 이게 다라니. 사라진 의미들. 헤어지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은 ‘허무’였다.
어린 왕자가 찾아온다면 재미없어서 침만 뱉고 돌아갈 작고 볼품없는 행성이 된 기분. 퇴출당한 명왕성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134340 플루토, 행성 퇴출.
한때 사랑이었으나 이제는 사랑으로 구분되지 않는 것. 우리는 그런 것을 했다.
지금의 취향을 온전히 내 취향이라 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당신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나일까? 나는 누구인가? '지금의 나'는 10년 동안의 내가 만들어왔다고 생각하며 10년의 노력에 대한 성과를 측정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렇다면 지난 10년. 이 사랑의 성과는 어떻게 측정을 해야 되는 것일까?
남아있는 그 사람의 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막막해 멍하니 서있다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내리러 부엌에 갔다. 그런데 찬장에 모카포트가 없었다. 없어진 것들을 하나씩 눈치채며, 부재를 실감했다. 모카포트가 없어서, 커피를 내릴 수 없어서 울었다.
그렇구나. 정말 없다.
‘트롱프뢰유(trope l’oeil)’라는 그림 기법이 있다. 실제의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 ‘살바도르 달리’로 대표되는 그런 그림들. 일명 ‘속임수 그림’을 칭하는 말.
혼자 지내면서 몇 번인가 그 사람의 잔상을 마주했다. 속임수 그림 같은 모습으로. 철저하게 사실처럼 묘사된 그의 잔상들. 춥다고 이불속으로 뛰어들어오는, 잔소리를 하기 위해 나를 부르는, 요리를 하다가 신나서 춤을 추는 그 사람. 디테일한 잔상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사랑하지를 말 걸. 애초부터 같이 살지를 말 걸. 가당치도 않은 후회를 해보았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하겠지. 어리석다.
아무렇지 않다가 또 어느 날은 난데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게 무슨 눈물인지,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강아지가 다가오더니 눈물을 핥았다. 미안해. 내 슬픔을 먹게 해서 미안해. 따뜻함이 닿으니 그제야 울음이 소리를 냈다.
누가 그랬다. 이별은 삶에서 그 사람을 도려내는 일.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죽음과도 비슷해 애도기간이 별도로 필요하다고. 갑작스레 끝난 관계에 대해 적응할 기간을 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 정말로 끝났다. 강아지와 고양이 앞에 앉아 당부한다. 이제 그 사람은 더 이상 오지 않으니까 너도, 그리고 너도. 더 이상 기다려서는 안 돼. 나도 마찬가지야. 이건 우리 모두에게 하는 당부야.